GENESIS44 | 창세기 44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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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44 | 창세기 44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44장 : 구원의 요체 : 하나님의 뜻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34절까지)

1절입니다.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요셉이 지금 환대를 베푼 뒤 형제들 모르게 은밀하게 계략적으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여기 ‘청년’은 가장 어린 베냐민이죠. 일부러 은잔을 넣은 겁니다.

3절입니다.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절입니다.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절입니다.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요셉은 점을 치지 않았겠지만 일부러 모함을 주기 위해 이 특별한 은잔을 통해 점을 치는 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니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절입니다.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절입니다.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우리는 번역을 종이라 하지만 여기서는 bondmen이라 부릅니다. 일반 노예가 아니고 이것은 돈을 못 갚았을 때 오는 노예를 말합니다. 은잔을 가져간 자는 죽음으로 보상하고 자신들은 노예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10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절입니다.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각 푸니’

12절입니다.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열한명의 자루를 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조사합니다. 형제들은 조마조마하지만 르우벤부터해서 쫘악 자루를 열어봤는데 맨 마지막 베냐민에게서 발견된 겁니다.

13절입니다.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니라’

14절입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지금 열한 형제들을 표현하는데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에요. 유다가 맏이가 아닌데 뭔가 바뀌었어요. 네 번째인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유다가 형제들 가운데 영적으로 인도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요셉이 자기를 거짓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점치는 건데 하면서 그들에게 덮어씌우는 겁니다.

16절입니다.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유다가 모함을 받았는데도 전혀 항거를 안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유다인데 왜 유다가 계보를 이어가고 왜 유다가 믿음의 자손으로 이어가는지 원인을 발견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왜 오늘의 주인공이 이스라엘이 아니고 유다일까요? 그 이유가 오늘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중에 갈라질 때 유다와 베냐민이 남유다가 됩니다. 나머지 열지파가 북이스라엘이 됩니다. 그런데 진짜 정통인 유다는 다윗혈통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우리가 말하는 유대인은 엄밀하게는 유다인과 베냐민인과 극소수의 레위지파의 후예들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 인구가 전 세계에 3억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흩어 버리신 것입니다. 왜냐? 구원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금 남은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그러면 왜 유다만 살아남았느냐가 오늘 이유입니다.야곱이 안수하며 기도할 때 유다에 대해서 다스리게 된다는 예언이 나옵니다. 유다만 칭찬해요.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도 사라짐을 다 예언합니다. 그리고 르우벤은 정죄해 버리고 베냐민은 칭찬합니다. 이미 야곱이 열둘의 미래를 다 예언한 것 입니다. 그런데 그 유다가 다윗의 혈통으로서 살아남은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유다가 베냐민과 같이 옆에 있습니다. 오늘 유다가 자신을 희생해서 베냐민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유다와 베냐민이 가까운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절입니다.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이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절입니다.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절입니다. ‘우리가 내 주게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절입니다.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절입니다.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절입니다.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지금 유다가 과거를 설명하는 거예요. 왜 베냐민이 노예가 되면 안되느냐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요셉이 아직 동생인줄 모르고 지금 요셉 당신이 바로 같은 분인데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해서 데려왔다고 말합니다.

24절입니다.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5절입니다.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절입니다.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베냐민과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가 요셉을 볼 수 없다는 겁니다.

27절입니다.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요셉과 베냐민이죠.

28절입니다.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절입니다.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만약에 베냐민을 안데려가면 아버지가 죽는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유다가 아버지가 죽기 때문에 자기가 아버지 앞에 보증 걸고 담보걸고 베냐민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는 겁니다.

30절입니다.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베냐민의 생명이 하나라는 것은 야곱이 베냐민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베냐민이 안가면 100% 죽는 거예요.

31절입니다.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절입니다.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곧이어 유다 자기가 담보를 했다고 표현합니다.

33절입니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사실 ‘그 아이’는 표현이 잘못된 거죠. 20살이 넘었으니까 아이가 아니고 청년이죠. 베냐민이 올라가고 유다가 대신 종이 되겠다는 겁니다. 열한 형제 가운데 유다 자기가 이렇게 한 이유가 뭐냐 그거예요.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 때문입니다. 야곱에 대한 유다의 애정과 사랑입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아버지 야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자신의 희생을 결단한 것입니다. 만약 이때 유다의 결단이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내 뜻이 무너져야 되는데 어떤 뜻이냐? 첫 번째는 예배의 뜻입니다. 내가 원하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예배 장소, 예배 처소에서 드려야 합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서 예배를 드리며 그것이 죄가 되는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삶에 대한 뜻입니다. 내 삶을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되고 내 삶을 내가 하나님 뜻에 맞춰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삶을 살아갈 때 내가 내 뜻대로 결정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어마어마하게 불효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사역입니다. 우리가 사역에서 부흥하면 하나님께서도 좋아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내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방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왜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살아갈까요? 하나님이 인식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내 뜻대로 사는 것들이 전부다 하나님이 볼 때는 아주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시는지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이 힘듭니다. 구원은 내가 알아서 사역하고 알아서 예배하고 알아서 사는 게 아니라 내 삶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범주 내에 들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붙잡고 나아가다보면 유다처럼 내가 손해 볼 때가 있고 희생할 때가 있습니다. 전적인 손해, 전적인 희생! 그런데 이게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 뜻에 대해서 내가 그냥 희생하고 손해보고 내가 헌신하는 겁니다. 십자가를 져야지 구원받는데 십자가는 각각에 부여된 하나님 뜻입니다. 그걸 잡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이 내 인생에 무엇을 원하실까? 각각 우리에게 두신 뜻이 있으십니다. 우리는 그 뜻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그 뜻을 붙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유다처럼 야곱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기 목숨마저 버리면서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34절입니다.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마음이 오직 아버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어요. 유다가 지금 여기서 종 되면 어떻게 고통당할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 마음, 아버지에게 이런 큰 고통이 임할 텐데, 고통스러울 텐데 하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지금 유다는 말합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갈 때 나의 구원자이신 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모든 걸 해야 되며 결정해야 되며 그 뜻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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