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37 | 창세기 37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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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37 | 창세기 37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37장 : 속죄의 그림자 : 요셉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36절까지)

1절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그의 아버지는 이삭입니다. 야곱이 드디어 세겜에서 벧엘을 거쳐서 이제 헤브론에 온 겁니다. 물론 그 때 이삭은 죽은 상태 입니다. 돌아가셨고 장사지낸 상태입니다.

2절입니다.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요셉이 열일곱 살입니다. 요셉이 하란에서 나올 때 1세였죠. 16년이 지난 상태입니다. 십칠 세 됐을 때 영성이 떨어진 라헬과 그의 여종들이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 형들이 나중에 요셉을 파는 주동자들이 됩니다.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베냐민이 있지만 요셉은 제일 막내니까 자기는 양을 안치고 중간에서 주로 심부름을 한 겁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막내들은 심부름을 많이 합니다. 요셉이 직접 양을 안치고 아마 야곱의 심부름꾼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부름을 하다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게 말합니다. 같은 무리가 되면 죄를 져도 서로 봐주는데 요셉은 너무 정직해서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말한 것입니다.

3절입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옛날에는 옷이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옷 한 벌은 지금 시가로 치면 한 이천만원 정도 됩니다. 싼 옷들도 이백만원 정도 합니다. 특히 색깔이 많이 들어가면 귀족입니다. 원어가 ‘many colours'입니다. 부자일수록 여러 가지 색물감을 들여 옷을 만드는데 요셉은 지금 물감을 들인 채색옷을 입었으니 엄청 가격이 나가는 옷을 입힌 것입니다.

4절입니다.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지금 형제 가운데 뭐가 많습니까? 시기가 많죠. 형제간에 서로 사랑받기 위해경쟁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런데 막내만 예뻐하니까 당연히 미워하는 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거예요. 안 미워할 수 없죠. 여기서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는 사실은약간 오번역인데 이것은 그에게 ‘그냥 좋게 말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말할 때마다 삐딱하게 말을 꼬아서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5절입니다.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이제 꿈까지 꾸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가뜩이나 미운 짓하는데 세상에 요셉이 꿈 얘기도 자기 잘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뜩이나 미운데 더욱 미워하는 것입니다.

6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절입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원어는 ‘절하다’가 아니고 ‘고개를 숙이다’입니다. 존중의 표현입니다. 지금 단들이 일어났는데 형제들의 단이 고개를 숙이는 거예요. 막내인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형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경의를 표하려면 왕이 되거나 지배자가 되어야 되는데 막내가 형들의 왕이 된다니 상상이 안 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개 꿈이다. 마귀 꿈이다’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열 받을 때 ‘니 꿈 그거 마귀 꿈이야’라고 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꿈을 개꿈, 마귀 꿈으로 여기지 성령의 꿈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거죠. 요셉을 더욱 미워합니다.

9절입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이번엔 형제들만이 아닙니다. 요셉이 나중에 국무총리 됐을 때 처음에 누가 옵니까? 처음에 형제들이 와서 엎드립니다. 나중에 야곱이 또 내려가죠. 그 때 전부다 엎드리죠. 지금 이것을 꿈으로 꾼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 사실은 이것은 야곱과 어머니와 형제뿐만 아니라 사실은 이것은 영적으로는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그리스도를 의미 합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구원받은 백성의 모델이고 요셉은 예수님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속죄에 대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이제까지는 성결 쪽인데 창세기 내에도 속죄가 나옵니다. 속죄가 무엇인지 성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0절입니다.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야곱도 약간 거부감을 가집니다. 너무 말이 안되니까 비록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꾸짖습니다. 야곱도 영성이 깊지 않다는 얘깁니다. 영성이 깊지 않아서 요셉의 예언적인 꿈을 잘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영성이 깊고 고수였다면 꿈 이야기를 듣고 딱 압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구나’ 하고 그걸 인정하고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도 요셉을 꾸짖은 겁니다.

11절입니다.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그래도 야곱은 훌륭한 게 비록 꾸짖었다 할지라도 요셉의 말을 마음에 간직해 둔 것입니다. 혹시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드디어 세겜에 갑니다. 지금 헤브론인데 왜 세겜에 갈까요? 헤브론에서 반경 한 60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꽤 먼 거리인데 왜 갔을까요? 초지가 없는 상태임을 말해 줍니다. 뭡니까? 드디어 기근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세겜으로 갈 일이 없는 것입니다. 60km를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양을 끌고 가야 합니다. 보통 먼 거리가 아니고 힘든 길이 아닙니다. 이때부터 야곱에게 기근이 찾아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 하겠나이다’ 드디어 막내니까 요셉을 보냅니다.

14절입니다.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근데 말을 첨부해요. 왜 첨부할까요? 쉽게 말하면 농땡이를 친다는 겁니다. ‘잘하는 거 보고와’ 필요 없어요. 사실 지금 야곱은 참 성실했는데 야곱의 자녀들은 성실하지 않은 겁니다.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믿을 사람한테 별로 안해요. 아무 잔소리 안하잖아요. 근데 못 믿을만하니까 요셉에게 잘 보고하라고 한 겁니다.

15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지금 요셉이 찾는 거예요. 갔는데 못 찾은 거예요.

16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절입니다.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도단은 세겜에서 20km입니다. 세겜에 수가성이 있죠. 야곱의 우물.에발산 있고요. 헤브론에서 무려 80km 떨어진 곳이에요. 세겜에도 초지가 없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지금 기근의 심각성을 말해요. 기근이 너무 심한 거예요.

18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절입니다.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드디어 형제들이 모의합니다. 멀리 오니까 ‘우리가 여기서 자, 죽이자’ 하는 겁니다.

20절입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절입니다.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자, 지금 그를 죽이려하니까 르우벤이 방해합니다. 르우벤이 첫 번째 옛날에 의붓엄마와 간음하죠. 죄를 지었는데 르우벤이 요셉의 죽음에 대해서 제재를 겁니다. 르우벤이 약간 변화됐음을 의미합니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상징이에요. 근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는데 대해서 르우벤은 지금 제재 거는 거예요. 단면이지만 르우벤이 어느 정도 상당히 변화됐음을 알 수 있는 거예요. 나머지는 변화안됐어요. 근데 르우벤은 지금 그걸 막는 겁니다.

22절입니다.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자, 지금 구덩이에 던진 다음에 자기가 따로 가서 건지겠다는 거예요.

23절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드디어 옷을 벗깁니다. 빨가벗겼을까요? 겉옷일까요? 겉옷일 확률이 큽니다. 빨가벗긴 것 같진 않아요. 왜냐면 지금 채색옷에 열 받아서 옷을 벗깁니다. 예수님도 나중에 옷 벗기시죠. 예수님은 빨가벗기셨어요. 달라요. 예수님은 아무것도 안 걸쳤어요. 지금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인데 요셉은 속옷만 입고 옷을 다 발가벗겨져요. 예수님은 완전히 다 벗겨지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적으로 너무 수치스러워요. 십자가에 못박힘과 창에 찔리심과 가시관과 채찍만이 아니라 이 수치스러움은 말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것도 몇 명입니까? 수백 명 있는 가운데 그걸 당한 겁니다.

24절입니다.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다행히 물이 없었어요. 그래서 던집니다.

25절입니다. ‘그들이 앉아’ 제가 이것도 시간이 없어 빨리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에 한 여섯 시간 정도 심문당한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성경에 짧게 나와 있는데 시편에 기록돼 있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직전에 너무 많은 고문을 당한 그런 장소가 있어요. 제가 이스라엘 갔었는데 그 지하였는데 어마어마한 그런 고문형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그 시편에 그 고통당하는 장면이 구덩이입니다. 그걸 상징하는 거예요. 이 구덩이는 예수님의 심문당한 장소를 상징해요. 십자가 직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거기는 고문에 필요한 것도 다 있거든요. 요셉은 구덩이에 빠짐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십자가의 모형에 대한 일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길르앗은 굉장히 포괄적이에요. 요단강 동편을 다 길르앗이라고 불러요. 지금 여기서 길르앗에 왔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요. 하튼 동쪽에서 건너가지고 여기 도단에 온 거예요. 도단은 갈릴리 바로 밑에 쯤 되는데 얍복강 위쪽이니까 이쯤 되는데 여기서 건너 온 겁니다. 누가? 이스마엘 그런 사람들이 온 겁니다.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여기 ‘향품’은 오번역이에요. 향품이 아니고 ‘양념’이에요. 양념을 왜 가지고 다닐까요? 제가 볼 때 양이나 소를 먹을 때 그냥 로스해서 먹질 않고 양념을 넣어서 먹는 거 아닐까요? 우리 불고기할 때 양념하잖아요. 그래서 양념 자체를 파는 문화가 있지 않을까요? 이 양념을 우리처럼 배추절임 할 것도 아니고 분명히 이것은 고기 먹을 때 쓸 텐데 그래서 분명히 아마 그 당시에 고기를 같이 끓일 때 동시에 사용됩니다. 두 번째 ‘유향’ 오번역이에요. 유향이 아니고 연고에요. 상처가 났을 때 이 연고가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많이 쓰인 것 같아요. 양념도 쓰이고 연고도 쓰이고 그 다음에 몰약은 맞아요. 몰약은 언제 쓰냐면 부패 방지시에 쓰기도 하지만 사실은 일반적으로 쓸 때는 해열 진통제에요. 몰약은 해열진통제이기 때문에 그 당시는 아프면 무조건 약 진통제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진통제라는 의약품과 식이식품인 이런 양념과 연고를 발라가지고 껍쳐보잖아요? 이거 외에도 많이 있겠죠. 이것을 가지도 다니는 상인들이었습니다. 이걸 가지고 애굽 왜 갑니까? 쉽게 말하면 애굽에 팔겠다 그거죠. 이스라엘의 장사꾼들이 이런 걸 갔다가 애굽에 파는 거예요. 어서 가지고? 바로 애굽이 중앙인데 지금 치면 미국인데 가장 중앙권에 이런 식민지가 아니다할지라도 개발도상국에 있는 걸 싸게 사가지고 가서 파는 거예요. 싸게 사서 갔다 파는 사람이 지나가는 겁니다.

26절입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유다가 등장해요. 유다가 구원받았죠. 드디어 나와요. 유다가 범죄해서 아직 안 나오는데 유다는 범죄했는데 유다는 구원받았어요. 열두 형제가운데 정확한 구원은 유다에요. 왜? 예수님의 혈통이 어서 옵니까?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 다음에 유다에요. 유다로 이어져요. 그래서 유다에 대한 창세기 장이 따로 나옵니다. 유다가 분명히 자기 며느리와 간통해서 범죄했는데 유다가 회개가 이루어진 거예요. 그래서 유다가 지금 요셉이 가는 것을 막습니다. 요셉이 가는 걸 막는 걸 왜 했을까요? 쉽게 말하면 구원받았다는 얘기에요. 이 모든 스토리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는 거예요. ‘유다, 구원 받았어’ 하고 유다가 지금 파는 것을 말리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겁니다.

27절입니다.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르우벤이 제일 큰 형이었고 그 다음에 둘째가 레위 셋째가 시므온 넷째가 유다였거든요. 다 레아에게서 낳은 자들이고 가장 나이가 연장자인데 레위와 시므온은 여기 안 나오지만 그들은 지옥 갔을 확률이 크죠. 그들은 신망을 잃었고 유다가 입김이 센 것 같아요. 르우벤은 간통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약간 약한 것 같고 유다가 좀 힘이 들어가서 유다 말을 들은 겁니다.

28절입니다. ‘그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자, 미디안이라고 바뀌었어요. 아까는 분명히 이스마엘 사람입니다. 지금은 미디안 사람이에요. 아니 성경이 어떻게 된 겁니까? 틀릴 수가 있습니까? 아라비아 남서쪽이 미디안 지역이죠.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가 낳은 네 번째 아들이에요. 미디안 지역에 시내산이 있는데 이스마엘하고 섞여 있어요. 왜일까요? 왜냐면 제 생각에는 이스마엘 자손인지 미디안인지 헷갈렸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분명히 같은 사람인데 이들이 볼 때는 형제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스마엘 자손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어떤 형제들은 미디안이라고 생각해요. 왜일까요? 같이 섞여있던 거예요. 이미 미디안과 이스마엘은 같이 섞여 산 겁니다. 그래서 이제 헷갈린 겁니다.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절입니다.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르우벤은 지금 자기가 구해줄려고 했는데 요셉이 없는 거예요. 옷을 찢은 겁니다.

30절입니다.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지금 아이라고 말해요. 르우벤이 자기는 지금 30살인데 17살짜리 요셉을 아주 애로 본 거예요. 날 때부터 봤으니까. 날 때부터 보면 항상 애기에요. 그러니까 르우벤 마음속에는 요셉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겁니다.

31절입니다.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숫염소’는 오번역인데 ‘숫염소의 새끼염소’에요. 그러니까 큰 것이 아니고 작은 것을 잡은 겁니다.

32절입니다.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지금 속인 거죠. 지금 자녀들이 야곱을 속입니다. 야곱도 옛날에 아버지를 속였죠. 야곱이 아버지를 속인 죄를 사함 받았을까요? 사함 받았을 거예요. 왜? 사함 받았으니까 가나안 땅에 오죠. 분명히 야곱은 용서 받았어요. 그런데 자기는 용서받았는데 지금 자녀들이 자기를 또 속이는 거예요. 이게 오늘 배울 속죄이론이에요. 성결은 죄를 사함 받는 거예요. 내가 옛날에 도둑질 했어요. 근데 지워졌어요. erase가 사함입니다. forgiveness용서가 아니에요. 사함은 지워지는 거예요. 분명 없어졌어요. 근데 뭐가 남았느냐? 죄를 지었다는 그 한마디 단서가 남은 거예요. 요셉이 지금 예수님의 모형인데 지금 요셉은 나중에 어떻게 됩니까? 애굽왕의 총리가 되죠. 예수님께서는 지금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권을 이어받게 됩니다. 십자가는 죄를 지은 사실마저 없애는 거예요. 이런 거예요. 전과 10범인데 죄가 없어요. 탕탕탕 무죄판결 내렸어요. 죄를 지은 과거는 남은 거예요. 근데 속죄는 한 번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거예요. 천국에 왜 가느냐?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없죠.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천국에 왜 가느냐? 속죄 때문이에요. 하나님께서 죄를 한번도 안 지었다고 판단하시는 거예요. 받아주는데 ‘너, 옛날에 이런 죄를 용서했어’가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한번도 안 지었다고 보는 거예요. 그게 속죄에요. 속죄는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 안에 들어오죠. 그러면 속죄가 적용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내가 죽는 순간에 ‘너는 날 때부터 죄를 한 번도 안 지었어’ 그러는 거예요. 그것이 속죄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래서 우리는 의인이에요. 성결도 의인이 있죠. 우리가 죄를 짓지만 죄를 사함 받습니다. 죄가 지어져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가 없어요. 하지만 작은 소제가 남아있죠. 속죄는 내가 이런 죄를 지은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완전한 의인이에요. 다시 말하면 한 번도 죄를 안 지은 것처럼 나를 받아주는 사건 그게 속죄입니다. 그래서 속죄만이 구원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겁니다. 성결은 생명을 얻는 근거라 한다면 속죄는 영생을 얻는 근거가 되는 겁니다. 두 개가 다른 건데 그래서 생명에 예수님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계속 속죄가 적용되요. 다시 우리가 죽는 순간에 속죄가 적용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속죄 때문에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33절입니다.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절입니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애통하기 위해서 삼베로 허리를 동입니다. 삼베는 잘 찢어지지 않는 옷감이죠.

35절입니다.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지금 야곱의 최고의 애통을 보여 줍니다. 자기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을 때도 안 울었어요. 운다는 얘기 없었어요. 자기의 사랑하는 라헬이 죽었어도 운다는 얘기 없었어요. 자기 아버지 죽어도 울었다는 얘기없어요. 야곱이 처음으로 웁니다. 왜 우냐? 그 정도로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 거예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어요. 그러니까 야곱이 ‘나도 스올 갈 거야. 나도 음부에 죽으러 갈 거야’하고 밥도 안먹고 우는 거예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굉장히 사랑하는 대상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그냥 예수님 생각할 때 ‘하나님과 다른 분이야’ 아니에요. 예수님은 아들로서 계시지만 하나님이 굉장히 사랑하는 대상이에요. 같은 하나님이신데요? 아니에요.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성부하나님이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세요. 그걸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가 속죄가 적용되는 이유가 뭐냐?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는 자기 아들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그 제사가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일반 번제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지성소의 번제단 법궤위에 속죄 뚜껑 속죄소가 있어요. 속죄의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달라요. 우리는 번제단에서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건 우리의 하나님 앞에 드릴 예배에요. 하지만 법궤위에서의 속죄제사는 예수님이 드리신 거예요. 그것은 속죄가 되는 거예요. 다른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진짜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따로 있는데 바로 지성소에서의 예배가 이 속죄인데 하나님께서 이 속죄를 받으시고 성결 안에 들어온 자기 제사장들을 우리를 받아주시고 우리를 천국인으로 삼는 겁니다.

36절입니다.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친위대장은 경호원이에요. 그러니까 바로를 경호하는 사람 중에서 대장이 있어요. 그게 보디발이에요. 그 경호대장에게 팔렸어요. 바로의 가장 측근에게 팔린 것입니다. 뭡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나중에 애굽의 총리로 만들기 위해서 계획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을 통해서 성결과 속죄를 구분해야 되고 우리가 구원받은 근거는 속죄 때문임을 알고 항상 예수님께 우리는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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