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31 | 창세기 31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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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31 | 창세기 31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31장 : 우상숭배 죄

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55절까지)

1절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온지 20년 됐죠. 근데 지금 라반이 재산이 느는게 아니라 야곱의 재산만 늘고 라반은 줄어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새끼를 날 때 다 점박이만 낳는 겁니다. 라반의 아들들이 지금 라반에게 부추기는 겁니다.

2절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라반하고 친했죠. 장인어른이면서 동시에 같은 파트너십으로 친했죠. 근데 라반이 자기는 선한데 자꾸 주변에서 그러니까 라반도 이게 뭔가 있지 않나 하면서 이제 안 좋은 겁니다.

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그 때 이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는데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안 나왔지만 앞뒤 전후로는 꿈일 확률이 큽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만날 때 야곱은 많이 꿈으로 만나죠. 꿈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돌아가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4절입니다.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지금 왜냐면 야곱이 아주 진중한 긴밀한 내용이니까 집에 가서 말하면 다 식구들이 있으니까 자기 부인 라헬과 레아와 가장 중요한 비밀회의를 한 거죠. 그래서 양 떼가 있는데 불러 내서 말한 겁니다.

5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자기를 토로하는 거예요. ‘장인어른 표정이 요새 안 좋아. 안 좋은데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셔’ 하고 자기를 토로합니다.

6절입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절입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해치다’ 그러니까 품삯을 변경하는 동시에 ‘해치다’는 쉽게 말하면 야곱 입장에서는 좀 우리가 어떤 몸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20 년 동안에 봉급도 바꾸면서 몸 다툼도 있을 정도에 어떤 상황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8절입니다.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어떻게 품삯을 내렸을까요? 원래는 지난번에 한 것처럼 점이나 얼룩 또는 까맣고 하얗고 까맣고 하얗고 된 거는 전부다 야곱 것이었죠.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니라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은 오번역인데 원어로는 얼룩을 의미합니다. ‘이제 얼룩진 것만 네 꺼야. 야곱꺼야. 나머진 내 꺼야 라반꺼야’ 그러다가 또 이게 많이 나오니까 다시 또 ‘이것만 네 꺼고 나머진 내 꺼야’하면서 라반이 계속 품삯을 바꾸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곱입장에서 그걸 다 수용했죠. 근데 몇 번씩이냐? 열 번을! 20 년 동안에 열 번을 계속 바꿉니다. 그만큼 라반입장에서는 이 물질적인 부분이 컸다는 얘깁니다. 라반은 독립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9절입니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그런데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야곱의 새끼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10절입니다.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 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이렇게 된 이유가 뭐냐? 암양하고 숫양이 짝짓기를 하는데 꿈에 봤는데 야곱 꿈에 숫양들이 다 이런 점 있거나 얼룩있거나 이렇게 체크된 무늬만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그런 걸 나오게 한 겁니다.

11절입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이것은 굉장히 진보된 상태의 영적인 수준이에요. 꿈에 하나님이 우릴 부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부를 때 하나님의 음성은 독특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대답을 하죠. 여기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많이 들어봤죠. 사무엘도 그렇고 많이 그랬죠.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 들을 때는 그런 말이 안 나오는데 좀 듣다보면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 내가 여기 있어요. 하나님, 나에요’라고 대답을 할 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야곱이 지금 하나님을 꿈에 한 번 만난 건 아니고 여러 번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여기 창세기에서는 내용들이 생략되었음을 우리에게 의미합니다.

12절입니다.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뭐라 말씀하시냐면 모든 짝짓기 하는 숫양들이 다 점박이가 있다는 건데 ‘내가 왜 이렇게 하는 줄 아느냐?’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라반이라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너무 악하다는 거예요. 악해가지고 지금 야곱에게 몰아주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벧엘은 중간 지점이었죠.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태어나죠. 지금 하나님께서는 벧엘이라는 중간 지점을 말씀하시는데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뭡니까? 야곱에게 있어서는 바로 벧엘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벧엘이 갖고 있는 영적인 야곱의 신앙으로 돌아오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절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팔았단 말이 맞죠. 원래 한 명당 계산할 때 현재 시가로 보통 3 천만원 많으면 1 억원 정도가 한 여자의 값인데 지금 야곱은 14 년을 일했으니까 아주 박봉을 친다할지라도 한 달에 백만원 1 년에 천이백만원이면 2 억8 천만원 아닙니까? 근데 이건 최하의 숫자인 거고 많이 사용하면 잘 보면 28 억원 되는 거고 이 많은 막대한 금액을 딸들 입장에서는 사실 먹었단 얘기죠. 그래서 ‘우리 아버지가 우리를 팔아버린 거야’라고 말한 겁니다.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지금 야곱이 레아와 라헬 자기 부인의 동의를 얻어냅니다. 어떤 데 대해서? 돌아갈 것으로 동의를 얻어냅니다.

17절입니다.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테우고’

18절입니다.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밧단아람은 하란입니다.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나중에 이삭이 헤브론에 가서 사는데 이 당시 이삭은 브엘세바에 있는지 헤브론에 있는지 아직 몰라요. 이삭이 사는 동안 가게 되죠. 물론 가지 않습니다.

19절입니다.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라반과 야곱과의 양떼거리는 3 일 거리였죠. 3 일 거리면 어쩌면 최하 60 km에서 100 km되겠죠. 그런 거리에 떨어졌는데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다! 거리상으로 3 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상태에 있는 겁니다. 드라빔은 소형 조상신이에요. 크기는 다양한데 자기 조상들의 형상이나 자기 형상을 만들어서 깍은 목조나 인형같은 겁니다. 드라빔은 라반 것이에요. 라헬이 라반의 드라빔을 훔칩니다. 왜 일까요? 라헬은 우상 숭배자였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처음에 라헬 지옥 갔다고 그랬죠. 지금 기독교집안인 야곱집안에서 레아는 천국 들어가는데 라헬은 이중에서 우상을 섬기는 그런 소위 말하는 정통이 아니에요. 그래서 라헬은 빨리 죽게 되고 지옥 갑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기독교라는 우리 세계 속에는 우상숭배가 엄청 많습니다. 오늘 증명해 드립니다.

20절입니다.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21절입니다.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절입니다. ‘삼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3 일인데 여기 하란에서 길르앗은 요단 동편의 갈릴리 밑에 야르목 강이 있고 사해 가운데에 아르논 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와 사해 사이에 요단강 지류가운데 얍복강이 있습니다. 이 얍복강과 아르논 강 사이를 길르앗이라 부릅니다. 야곱이 얼마나 초조했으면 세상에 남자들이 일주일 걸리는 거리를 그런 안좋은 악조건에서 3일 만에 옵니다. 아우, 대단해요. 그 추진력 대단해요. 그래서 왔던 겁니다.

23절입니다.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칠 일 길 맞습니다. 여기 항상 칠 일 길입니다.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24절입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라반은 원래 아람사람이 아니죠. 라반은 히브리 사람이에요. 왜? 야곱, 이삭, 아브라함, 데라 다 히브리사람인데 라반은 아람사람이라고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아람은 셈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죠. 아람어 지금 시리아에요. 시리아어를 쓰는 거예요. 히브리어를 버리고 아람어를 쓰는 거예요.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25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사실 장막이 아니라 전부 다 텐트에요. 그래서 일반 집에 쓰는 장막이 아니고 텐트입니다.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26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절입니다.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절입니다.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절입니다.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지금 라반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현몽하십니다. 중요합니다.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도 하나님의 계시는 얼마든지 임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다시 말하면 은사나 계시 이런 게 구원이 아닙니다. 이런 게 구원이 아니고 구원은 이따 나옵니다. 라반에게 임하여 말씀하셨어요.

30절입니다.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내 신은 드라빔이에요. 라반이 갖고 있는 드라빔을 훔친거예요.

31절입니다.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 하였음이니이다’ 뭡니까? 말을 안한 이유가 괜히 못가게 할까봐 딸들을 빼앗을까봐 그래서 했다는 것이에요.

32절입니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드라빔이죠.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지금 라헬이 훔쳤는데 야곱이 몰랐어요. 그러니까 야곱이 누구든지 발견되면 이건 끝장난다는 거예요.

33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라반이 볼 때 제일 의심되는 사람 누구에요? 야곱이에요. 야곱이 첫 번째 의심가는 사람이라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번째 레아에요. 레아가 라반과 관계가 안 좋았나 봐요. 안 좋아서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라헬이 라반과는 제일 가까운 관계라는 거예요.

34절입니다.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왜 못 찾았냐면 텐트는 야곱텐트, 라헬텐트, 레아텐트 그리고 두 시녀의 텐트가 각각 있었는데 장막 텐트에 둔 게 아니라 낙타 안장 밑에다가 넣은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복수처리 됐는데 드라빔이 한 개가 아닙니다. 여러 개인데 사이즈가 아주 큰 건 아닌것 같아요. 좀 작은 사이즈일 확률이 큽니다. 너무 크면 넣을 수 없으니까 라헬이 안장에 넣고 앉아 버린 거예요.

35절입니다.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생리라는 말도 쓰지만 원어에서는 ‘여성주기’라 했어요. ‘여성주기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이상하잖아요? 생리해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근데 이때 왜 못 일어났을까요? 추측이에요. 어쩌면 이 당시에는, 첫 번째, 생리대가 없었다. 그잖아요. 지금 변명을 하는데 ‘아버지, 내가 못 일어나요. 여성주기 기간이거든요’ 하는데 만약에 지금 같으면 ‘왜 못 일어나?’ 할 수 있는데 못 일어나는 정확한 이유를 대는 거예요. ‘못 일어나요’ ‘왜 못 일어나느냐?’ ‘여성주기에요’하는데 생리대가 없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 당시 생리대가 지금처럼 부착형이 아니었다. 둘 중에 하나에요. 부착형이 아니었다거나 또는 생리대가 없었다 둘 중에 하납니다. 그래서 지금 제일 정확한 변명을 대는 거예요.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드디어 넘어 갔어요.

36절입니다.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원어는 ‘격노하여’에요. 삼촌인데 무죄한데 세상에 훔쳤다고 하니까 격노하여 라반을 책망하는 겁니다.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이런 거예요. ‘아니, 훔쳐가지도 않았는데 왜 추격했어?’ 따지는 겁니다.

37절입니다.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여기 외삼촌 라반의 ‘형제’라고 번역이 됐는데 원래 형제가 아닙니다. 이거는 원어가 ‘식구’ 식구들이에요. 지금 야곱에게 형제가 없죠. 라반의 식구들과 야곱의 식구들 사이에서 판단하는 거예요. 드디어 ‘식구’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38절입니다.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낙태한 일도 없다! 굉장히 잘 돌본 거예요. 동물이 낙태를 안 한다! 굉장한 야곱의 성실함을 의미합니다.

39절입니다.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물려 찢겼는데 손실처리 안한 거예요. 내가 내 것으로 마크한 겁니다.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도둑맞으면 다 자기 것으로 처리한 거예요. 사실은 굉장합니다.

40절입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야곱이 지금 이제까지 울분을 말한 거예요. 한 번도 라반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이에요. ‘내가 20년 동안 어떻게 했는지 알아? 삼촌’ 하면서 자기가 그동안 했던 일을 다 얘기하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야곱은 하나님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다른 거예요. 하나님을 의식한 야곱. 그러니까 야곱이 라반이 보나 안보나 라반을 의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서 계수한 겁니다.

41절입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이것도 울분이죠. 열 번 동안 계속 바꾼 거예요.

42절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실제 라반의 모습이에요. 라반은 야곱을 빈손으로 가게 할 수 있는 아주 악랄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지금 조카가 외삼촌을 계속 책망하고 훈계하는 거예요.

43절입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절입니다.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5절입니다.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어떻게 세울까요? 고대사회에서 기둥이 나오죠. 직각으로 높은 기둥을 세웁니다. 그냥 수직된 기둥을 딱 세워서 밑에 있는 돌을 서 있게 하죠. 약속을 맺을 때 많이 쓰죠. 돌을 세워요. 보통 이런 돌은 크기가 작아도 사람보다 큽니다. 아메리카 가면 이런 기둥 많이 세워 놓았잖아요. 약속을 의미할 때 많이 합니다.

46절입니다.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무더기, 돌무더기는 돌을 막 쌓아 두는 거예요. 기둥과 무더기 두 개를 놓았습니다. 뭘까요? 약속을 맺을 때 증거 표시에요.

47절입니다.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여갈사하두다’는 아람어입니다. 이미 라반은 히브리 민족에서 끝났고 구원을 잃어버렸어요. ‘여갈사하두다’ 그리고 야곱은 갈르엣이라 부릅니다. 길르앗 지방에서 갈르엣이라 불러요. 이건 히브리어에요. 히브리어와 아람어가 창세기 가운에 처음 등장해요. 구원을 잃어버린 라반과 구원 가운데 있는 야곱의 대조입니다.

48절입니다.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49절입니다.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지금 드디어 영적인 세계에서 라반의 신앙과 야곱의 신앙이 갈라지는 겁니다. 성경에서 항상 이런 약속의 증표들이 있으면 그 사이는 갈라지는 거예요. 라반은 어떤 신앙이냐? 라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라반은 지옥에 들어가죠. 왜냐고요? 이제까지 내용이 그 내용이에요. ‘라반, 당신은 돈에 미친 사람이에요’ 그 얘기에요. ‘당신은 돈에 미친 사람이에요’ 또 ‘당신은 자녀에 미친 사람이에요’ 지금 라반이 추격을 왜 합니까? 목적이 양떼와 자녀 때문이에요. 주목적이에요. 지금이 사이에서의 증표는 야곱과 라반의 신앙차이, 돈과 자녀를 우상으로 섬긴 드라빔은 우상에 대한 하나의 스토리에서 만든 내용이에요.

50절입니다.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절입니다.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절입니다.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뭡니까? 상호불가침조약이에요.

53절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나홀도 천국에 들어간 겁니다. 데라가 있어요. 데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했죠. 하란으로 갔죠. 데라가 낳은 아들이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이었어요. 하란이 일찍 죽었죠. 분명히 지옥갔을 확률이 큽니다. 하란의 아들이 롯이죠. 데라도 나오는데 ‘나홀의 하나님’ 이게 중요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천국 가는 사람의 하나님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천국 가는 사람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객관적으로 드러나 지는데 지금 라반과 야곱을 갈라놓는 겁니다.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절입니다.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처음 나왔어요. 여기원어가 ‘희생제물을 바쳤다’에요. 야곱이 과연 20년 동안 제사 안 드렸을까요? 제사 드렸죠. 그 동안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마음에 우상이 있을 때는 예배 천 날 드려도 예배 열납 안됩니다. 예배는 지금 여기처럼 가나안 땅에 와야 예배가 열납되는 겁니다.

55절입니다.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드디어 라반과 야곱이 헤어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다 같은 교우며 다 같은 성도지만 죽을 때는 나누어집니다. 죽을 때는 어떤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요. 라반과 야곱은 동업자면서 장인, 사위 관계였어요. 근데 갈라집니다. 고향이 어딜까요? 라반의 고향은 하란이며 지옥입니다. 우리 가야할 고향은 바로 천국이에요. 우리는 고향인 천국을 사모해야지 이 땅에 우리 마음을 두면 안됩니다. 우리는 야곱을 본받아서 다시 벧엘의 하나님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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