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30 | 창세기 30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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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30 | 창세기 30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30장 : 지옥으로 인도하는 욕망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43절까지)

1절입니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레아가 4 명을 낳죠. 첫 번째가 르우벤, 두 번째가 시므온, 세 번째가 레위, 네 번째가 유다 4명을 낳습니다. 라헬은 지금 야곱의 사랑을 받는 가운데 있는데 아직도 뭐가 마음에 안 풀린 거예요. 그래서 지금 라헬이 자식이 없는것 때문에 쉽게 말하면 화풀이를 하는 겁니다. 막 열 받아서 소리를 지른 거예요.

2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이 라헬의 분노의 말에 대해서 자극을 받아요. 그래서 원어는 ‘야곱의 분노가 라헬의 말에 불붙임 당했다’고 되어 있어요. 야곱이 잘 있다가 라헬이 언성을 높이니까 순간적으로 열이 팍 받은 거예요. 열이 팍 받아서 하지 말라고 ‘내가 하나님이냐? 하나님께서 너의 출산을 막았는데’하면서 큰소리 지르며 말하는 겁니다.

3절입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지금, 종과의 어떤 관계가 일어납니다. 모든 성경에서 종은 당연히 지옥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있을 수 없어요. 자녀와 종과의 관계. 자유하는 사람은 천국 가는 사람이고, 종은 지옥 가는 사람인데 지금 라헬이 너무 열 받은 가운데 자기 시녀 여종 빌하에게 들어가라고 자녀 때문에 말합니다.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4절입니다.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지금 라헬이 경쟁심 때문에 아들을 낳으면 더 야곱을 차지하려는 마음 때문이죠. 야곱을 얻기 위한 마음입니다. 이런 경쟁의식이 사실 야곱의 모습이에요. 야곱이 에서를 잡고 나왔거든요. 경쟁심 때문에 에서 형을 또 속이는 이런 경쟁의식이 있는데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잘못을 볼 때 내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실 그것은 라헬의 모습이 아니에요. 야곱의 모습이에요. 야곱도 이기기만 한다면 뭐든 하는 사람인데 심지어 범법을 행하면서도 그런 일을 당했고 드디어 아들을 출산합니다.

5절입니다.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절입니다.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드디어 라헬의 첫 번째 아들 단인데 사실은 라헬이 아니고 빌하의 아들이죠. 단은 나중에 역사에서 사라지죠. 부부싸움을 대판한 다음에 자기가 야곱한테 씨받이를 시켜서 할지라도 역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야곱도 저주를 내리고 실질적으로 단 지파는 사라지게 됩니다.

7절입니다.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절입니다.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드디어 라헬은 경쟁에 이겼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지금 납달리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9절입니다.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레아마저 범죄 합니다. 레아마저 자기 시녀 실바를 시켜서 낳게 하는 거예요. 이 경쟁의식이 왜 오느냐? 이 경쟁의식이 오는 이유는 다 축복과 연관되어 있고 욕망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내가 남보다 더 나아야 되고 내가 더 많이 얻어야 되고 누려야 되고 남의 사랑을 받아야 되고 이런 경쟁의식이 다 인간의 욕망과 축복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내재된 모습들이 드디어 라헬에게 드러납니다.

10절입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절입니다.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갓을 낳습니다.

12절입니다.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절입니다.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드디어 레아도 역시 또 시녀를 통해서 둘을 낳게 됩니다. 어떤 아들입니까? 정상이 아니에요. 이건 종의 아들 네명이 탄생됩니다. 열두 아들과 디나 해서 열세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 중 네명의 아들이 탄생됩니다. 나중에 야곱의 칠십 명이 내려갈 때 야곱과 두 부인과 열두 아들과 디나 열 세 자녀죠. 열 여섯 명만 아브라함의 혈통이고 나머지는 종들하고 데려가죠. 내려갔을 때 분명히 혼혈됐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혼혈됐을 거예요. 다시 말하면 현재의 이스라엘은 사실은 엄밀하게는 순수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것입니다.

14절입니다.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르우벤은 레아의 첫 아들이에요. 많이 컸나봐요. 합환채는 ‘mandrake’에요. mandrake는 서양에서 굉장히 귀히 여기는 것으로 인삼처럼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뿌리가 사람모양을 하고 있어요. 이 mandrake는 그 어떤 불임을 치료하고 그런 면에서 효과를 봤다고 아마 사람들이 인정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도 진통, 마취, 진정 쪽으로 약 처방으로 쓰기도 하고요. 이게 귀한데 르우벤이 발견했어요. 그러니까 레아가 엄마니까 엄마가 받았겠죠. 라헬이 ‘그걸 지금 달라’ 왜? 자기도 애기를 낳고 싶어서 달라고 합니다.

15절입니다.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항상 야곱은 라헬과 함께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오직 라헬이에요. 그러니까 라헬이 하룻밤 잘 수 있는 권한을 언니한테 주는거예요.

16절입니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지금 드디어 야곱이 일하다가 들어왔어요. 이걸 보면 야곱이 집에서 띵가띵가 하지 않았구나 알 수 있어요. 항상 야곱은 일을 열심히 했구나 알 수 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들어왔는데 레아가 미리 나왔겠죠. 레아가 미리 나와서 ‘오늘밤은 당신 내꺼야’하고 말하고 합환채로 샀다고 말하는 거예요.

17절입니다.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절입니다.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레아는 복도 많아요. 지금 드디어 레아가 다섯 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잇사갈을 낳아요. 하나님이 레아에 대해서 더많은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베푼 은혜였습니다.

19절입니다.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절입니다.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하고 그의 이름을 스블론이라 하였으며’ 뭡니까? ‘나와 함께 살리라’ 이제까지는 안 살았다는 얘기에요. 이제까지는 야곱이 늘 라헬과 살았어요. 라헬과 살다가 가끔 같이 동침했겠죠. 근데 이제 여섯 번째 아들을 낳았는데 ‘이제는 살리라’하고 다시 소원을 바라는 거예요. 경쟁의식이 낳은 결과입니다. 당연한 거예요.

21절입니다.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드디어 막내딸이 나옵니다. 디나. 요셉의 누나죠. 레아의 처음 네 아들, 그 다음 종들에게서 나온 네 아들 그리고 그 다음 레아의 두 아들 열명 됐죠. 열명 다음에 드디어 열한 번째 딸이 나왔어요. 디나에요. 나중에 세겜 족속에게 강간당하는 일이 생기죠. 디나가 드디어 레아의 마지막 출산이었습니다.

22절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라헬을 처음 생각했어요. 라헬을 처음 생각하셨는데 라헬은 분명히 지옥 갔거든요.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23절입니다.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드디어 라헬의 첫 아기가 나왔어요. 이제까지 기다리던. 열한 명이 나왔고 드디어 라헬이 고대하던 게 나왔어요. 누굴까요? 바로 요셉입니다. 요셉이 나왔습니다.

24절입니다.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지금 라헬이 요셉 낳은 다음에 ‘아, 다른 아들 또 원해. 나도 좀 많이 낳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다.

25절입니다.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뭡니까? 라헬을 얻으려고 했는데 7 년 일했는데 레아를 보냈죠. 7 년 뒤에 밤에 들어와서 같이 동침했죠. 그리고 라헬을 주고 7 년 더 일하라고했죠. 뭡니까? 14 년이 지난 거예요. 야곱이 하란에 와서 라반 집에서 14 년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 한 얘기에요.

26절입니다.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뭡니까? 굉장히 충성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7절입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지금 라반이 잡은 거예요. 왜 잡느냐? 지금 야곱을 공짜로 부려먹었어요. 두 딸을 준 다음에 공짜로 14 년 동안 부려 먹었어요. 부려먹었는데 라반이 굉장히 부자가 됐어요. 그러니까 야곱은 두 딸 때문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야곱이 지혜롭게 했겠죠. 지금 많은 동물들을 모아 놓은 거예요.

28절입니다.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드디어 이제 품삯을 정하라고 말합니다.

29절입니다.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뭡니까? 굉장한 성실함을 말합니다.

30절입니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이런 거예요. 삼촌 집에 있는데 내 집이 어디 있냐 내 가족이 뭐냐 이겁니다. 왜? 남의 가족에 묻어 있는 거예요. 묻어 있으니까 나도 떳떳하게 나만의 어떤 공간을 원한 거죠. 당연하죠. 나만의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이건 처가살이도 아니고 사실은 외삼촌살이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곱의 마음속에는 독립된 공간을 원해서 말하는 겁니다.

31절입니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지금 품삯을 원치 않고 뭡니까? 야곱이 다른 카드를 제시합니다. ‘나 품삯 원치 않아요. 원치 않고 내가 다른 거 원해요’하고 말하는 겁니다.

32절입니다.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 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뭡니까? 양은 다 흰색이죠. 흰색가운데 점 있는 것 또 무늬진 것 이것 내것 되게 해달라는 거예요. 간편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이게 많이 안 나와요. 원래 확률적으로 양의 염색체에서 이런 무늬들이 많이 안 나옵니다. 라반은 당연히 오케이죠. 많이 안 나오는 걸 정했는데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라반은 오케이 된 거고 야곱은 왜 그랬을까요? 이게 오늘의 주제입니다. 야곱이 왜 그랬을까요? 야곱이 왜 이걸 선택했을까요?

33절입니다.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지금 간단한 겁니다. ‘와서 점 있거나 아롱진 것 안된 것은 보면 알지 않느냐. 품삯이 정확해요’하고 야곱이 지금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말한 거예요. 야곱이 계획적이지 않습니다. 심각해요. 왜냐면 이건 확률이 적어요. 야곱이 말이 나온 거예요. 야곱이 놀랬을 거예요. ‘아니 내가 이걸 왜 말할까? 나도 손해 보는 일을’

34절입니다.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절입니다. ‘그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얼룩무늬 있는 건 뭡니까? 번역이 사실 어려워요. 이게 원어가 ‘줄무늬가 원형으로 되어진’이에요. 줄무늬가 격자로 된 거예요. 원형으로 무슨 호랑이처럼 무늬가 된 것도 있고 또 점박이도 있고 또 다른 무늬가 있는 것도 있고 3가지 형태입니다.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절입니다.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떼를 치니라’ 현재 있는 것 중에서 라반에게 다 보냈어요. 왜? 앞으로의 품삯이기 때문에 앞으로 날 것들만 보내기 때문에 현재 이런 걸 라반에게 다 보낸 겁니다. 사흘길이니까 꽤 먼 길이죠. 사흘길이면 30 리 정도 넘겠죠. 굉장히 먼 거리죠. 30리 넘는 거리만큼 라반 것으로 떼어 놓습니다.

37절입니다.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자, 어떻게 만들었냐면 번역이 잘못된 건데요 나무가 있습니다. 가지가 있어요. 가지를 꺾었어요. 꺾어다가 이것을 요렇게 스트립(strip) 벗긴 거예요. 원래 있는 가지 색깔이 이거(푸른 가지)라 친다면 벗기면 흰색이죠. 또 원래 나무 색깔 해가지고 요런 것들을 야곱이 나뭇가지를 꺾어서 만든 거예요.

38절입니다.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물 먹으러 올 때 이런 가지를 막 놓은 거예요. 물 개천에다가 그리고 물통을 놓았겠고 물통에 양들이 먹는 거예요. 양들이 먹으면서 그 가지를 교배할 때 보게 만든 겁니다. 그래서 이제 임신할 때 그것을 보게 만드는 거예요.

39절입니다.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덜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얼룩덜룩 링 스트링(ring string)입니다. 점 있는 것 점박이에요. 아롱진 것은 긴 큰 반점 있는 겁니다.

40절입니다.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의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지금 이런 얼룩들이 많이 탄생되는 거예요. 뭐예요? 야곱얘기에요. ‘야곱, 네가 이제까지 이런 자들을 낳았지. 거기는 다 순수한 천국혈통이 아니야’ 아브라함, 이삭까지는 좋았어요. 물론 에서는 빠져나갔지만. 근데 야곱부터는 드디어 기독교 안에 천국과 지옥이 갈라집니다. 이게 중요한 논지에요. 언제 기독교라는 세계 속에서 천국과 지옥이 나눠지느냐 야곱 때 부터에요. 뭣 때문에? 인간의 욕망 때문에. 라헬과 레아와 야곱의 이런 내부적인 세계 속에 이 땅의 축복에 대한 사모함 때문이에요.

41절입니다.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절입니다.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점 있는 것이 더 튼튼해요. 더 잘돼요. 지옥 가는 사람들이 천국 가는 사람보다 더 잘되고 더 좋은 거예요. 보십시오. 이단과 사이비가 더 잘됩니다. 더 번성하고 더 부강합니다. 문제가 뭐예요? 본질이 없다는 겁니다.

43절입니다.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뭡니까? 복 받았어요. 복이냐? 복이 아닙니다. 이게 다른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럽니다. 야곱이 복 받았다고 ‘드디어 하나님의 사람이 복 받았다’ 복 아닙니다. 이게 복이라는게 인간에서온 잘못된 미혹에서 만든 결과 해석이에요. 복이 아닙니다. 우리는 뭐든지 잘 되면 복 받았다고 해요. 복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 뜻에 어긋날 때 우리는 징계를 받는게 우리는 하나님 사랑 받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기독교는 다 미혹됐어요. 기독교는 내 위주가 아니에요. 기독교는 하나님 위주에요. 하나님이 나의 존재 이유에요. 이게 기독교에요.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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