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DU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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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 구원의 방법 : 사역자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25절까지)

1절입니다.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들어’ 2장은 출발이 레위지파입니다.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레위지파는 각 지파에 흩어져서 가르치는 일과 예배를 담당한 지금으로 말하면 종교인입니다.

2절입니다.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애굽 왕 때문에 무조건 죽이는 때죠. 울음소리를 숨겼겠죠. 석 달 동안을 숨겨서 키웁니다. 석 달 되면 조금 안정됩니다. 석 달까지는 키웠는데 울음소리가 커진거예요.

3절입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매 그를 위하여 갈대 상자를 가져다가’ 갈대가 아니고 부들이입니다. 부들을 재료로 해서 만든 바구니인데 방주니까 최대한 물에 잠기지 않게 만들었겠죠. 여기다 모세를 누인 겁니다.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고’ 부들에다 송진을 칠하는데 접착제죠. 역청은 아스팔트 원료입니다. 방수로 아마 역청을 안팎으로 발랐을 겁니다. 완전한 노아 방주를 만든 겁니다. ‘아기를 거기 담아 나일 강 가 갈대 사이에 두고’ 강가가 아니고 부들 숲입니다. 숨길 때 강에서 보일 수 있게 만든 거예요.

4절입니다. ‘그의 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고 멀리 섰더니’ 미리암이 누나죠. 누나가 안가고 숲에서 보는 겁니다.

5절입니다.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나일 강으로 내려오고 시녀들은’ ‘시녀들’은 원어는 그냥 ‘처녀들’입니다. ‘나일 강 가를 거닐 때에’ 왕의 딸은 목욕하러 들어 왔어요.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있습니다. ‘그가 갈대 사이의 상자를 보고 시녀를 보내어 가져다가’ 바로의 딸이 헤엄치다가 드디어 발견하게 됩니다. 시녀를 불러 가져오게 하면서 미리암은 우연인 것처럼 여기를 지나가는 겁니다.

6절입니다.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

7절입니다.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미리암이 계획적으로 다 해놓은 거예요. 젖먹이 아기가 있으니까 원래 자기 엄마 요게벳을 소개하는 거예요.

8절입니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원래 친어머니를 불러 왔어요. 미리암과 요게벳이 같이 와서 모른척하고 시치미 딱 떼고 키워주겠다고 했겠죠.

9절입니다.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10절입니다. ‘그 아기가 자라매 바로의 딸에게로 데려가니 그가 그의 아들이 되니라’ 얼마 동안 먹였을까요? 3개월째 데려왔다가 젖먹이다 바로 딸에게 언제 데려갔을까요? 제가 볼 때는 3년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유아기가 3년입니다. 영의 나이가 있는데 영이 3살 될 때까지는 영적으로 절대적인 누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친어머니가 3살까지는 먹여준 것입니다. 육신적으로도 3살이 지나면 여러 가지 전염병에서 안전합니다. 전염병이 지나가고 약간의 안정권에 들어옵니다. 이 때 바로왕의 딸에게 데려간 겁니다. ‘그가 그의 이름을 모세라 하여 이르되 이는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내었음이라 하였더라’ 노아방주를 형상화시키는 이런 바구니에서 ‘물에서 건졌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의미하고 또 죄로부터의 구원을 상징합니다. 죄에서의 자유가 구원인 것입니다. 원래 출애굽기 자체가 죄에서의 탈출, 엑소더스를 의미합니다. 죄에서 탈출되면 다음에 모든 것들이 따라옵니다. 우리의 깊은 내면세계가 굉장히 평안해 집니다. 왜냐하면 진짜 우리를 묶는 세력은 환경이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에 있기 때문입니다.

11절입니다.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장성했는데 모세가 마흔살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애굽 사람이 자기 동족 히브리 사람을 치는 거예요.

12절입니다.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쳐 죽여’ 어떻게 죽였을까요? 때려서는 안 죽습니다. 숨통을 끊는 겁니다. 제 생각에 목조르기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모세가 악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로 찌른 것도 아니고 친 것도 아니고 제가 볼 때 어떻게 조르다 보니까 죽은 거예요.

13절입니다. ‘이튿날 다시 나가니 두 히브리 사람이 서로 싸우는지라 그 잘못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매’ 다음날 보니까 히브리인끼리 자기 동족끼리 싸우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또 간섭하는 겁니다.

14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누가 너를 우리를 다스리는 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
모세가 왕자로서 왕위를 이어받을 사람은 아닌 게 확실해요. 그래서 히브리 사람이 무시해서 말한 겁니다. ‘네가 애굽 사람을 죽인 것처럼 나도 죽이려느냐 모세가 두려워하여 이르되 일이 탄로되었도다’ 애굽 사람을 죽여서 모래에 묻었었는데 히브리 사람이 이걸 보고 안 거예요. 모세가 이일로 굉장히 두려워 합니다. 왜? 모세 입장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모세가 힘 있는 왕자라면 그럴 필요 없었겠죠.

15절입니다. ‘바로가 이 일을 듣고 모세를 죽이고자 하여 찾는지라 모세가 바로의 낯을 피하여 미디안 땅에 머물며 하루는 우물곁에 앉았더라’ 모세가 도망가는데 지금 상당히 먼 거리를 가는 거예요. 왜 이렇게 멀리 갔을까요? 제가 볼 때 애굽 왕의 분노가 컸다고 봐요. 웬만하면 근처에 가서 숨으면 되는데 아주 먼 거리를 돌아서 갑니다. 왜? 무서워서.

16절입니다.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들의 아버지의 양 떼에게 먹이려 하는데’

17절입니다.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 떼에게 먹이니라’

18절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아버지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버지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 떼에게 먹였나이다’ 모세를 애굽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옷이라든가 약간 검게 그을린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대부분 평가할 때 옷과 외모를 보거든요.

20절입니다. ‘아버지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을 대접하라 하였더라’ 르우엘이 지금 신났어요. 왜냐하면 일곱 딸이기 때문에 빨리 결혼시켜야겠다고 머리가 돌아가는 거예요. 지금 너무 잘 된 거예요. 그래서 르우엘이 데려오라고 그러는 겁니다.

21절입니다.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의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십보라가 첫 번째 딸이에요. 모세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니까 제가 볼 때는 첫째 딸을 빨리 준 거예요.

22절입니다.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이르되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오번역인데, ‘나그네’가 아니고 ‘이방인’입니다. 단어가 달라요. 모세가 거기서 이방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23절입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모세를 죽이려는 왕이 죽은 거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엄청난 규율과 억압 가운데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이 이번만이 아닌데 이제는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하나님 마음이 왜 바뀌었을까요? 중요합니다. 모세 때문입니다. 모세가 왜 등장됐을까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반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창세기와 출애굽기 사이에 왜 400년이라는 갭이 있느냐? 그동안 모세와 같이 진짜 신앙인이 없었다는 얘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길 원하시는데 그 역사를 사람을 통해 하시는데쓸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나타나서 이제는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24절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께서 고통을 들으시면서 무엇을 생각하셨을까요? 모세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각자 죄에서 벗어날 때 정말 모세처럼 준비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그 사람 때문에 물고기들과 영혼들을 돌아보십니다. 지금시대에 물고기가 없는 게 아니고 양이 없는 게 아니에요. 지금시대에 구원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뭐가 없느냐? 구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대한민국에 없는 게 뭐냐? 대한민국에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게 답입니다. 왜 지금 대한민국 교회가 어렵고 전파가 안 되고 왜 교회 부흥이 안 되느냐? 사람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을 보시고 힘들어도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미디안 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 때 그들을 생각하시고 모세를 쓰시기 시작하십니다.

25절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돌보셨고’는 ‘바라보셨고’입니다. 모세가 신앙적인 면에서 거의 완성됐을 때 하나님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기억하셨다는 거은 존중의 의미입니다. ‘어, 내 백성 저기 있어’ 언제는 안 바라보셨나요? 근데 저기 있어 하시고 그들을 존중했다는 거예요. ‘아, 쟤네들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 의해서 일을 결정하십니다.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 매인 거예요. 내가 땅에서 하는 그 행위들과 내 신앙적인 내용들을 말미암아 하나님은 결정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결정은 결코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내용들이 우리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것을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기도 때문에 하나님 마음이 바뀌어요. 하나님과 우리와 연계되어 있어요. 그래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영적인 상태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영국의 웨일스가 아주 신앙이 좋은 곳인데 거기에 있던 토마스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순교하면서 장대현교회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웨일스에 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처음에 모인 사람이 3명입니
다. 그 청년들이 매일 모여서 ‘하나님, 우리에게 이 웨일스에 끊임없는 부흥을 주세요’하고 몇 년을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 요한 웨슬레가 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불을 내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 불을 내릴 수밖에 없는 누군가가 반드시 존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기도한 다음에 웨일스의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현재는 웨일스가 신앙심이 가장 강해요. 웨일스의 부흥운동으로 영국이 4세기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전 세계를 지배하죠. 그 웨일스의 부흥운동에서 시작된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에서 우리의 모든 결심과 우리의 모든 생각과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결정에 엄청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탓하는 게 아니라 나를 탓해야 합니다. 내가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바뀌면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시는 겁니다. 모세 한 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드디어 생각을 바꾸시고 백성들을 바라보신 것처럼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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