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28 | 창세기 28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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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28 | 창세기 28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28장 : 가나안축복의 내용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22절까지)

1절입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축복하고 ‘God bless you’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신다’라고 인사일 확률이 큽니다. 축복 기도한게 아니고 우리가 하는 인사가운데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십니다’ 하고 인사일 확률이 큽니다. ‘또 당부하여’ 오번역인데 당부가 아니고 ‘임명을 부여하여 또는 명령하여’ 임무를 수행하는 겁니다. ‘임무를 수행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에서가 지금 헷족속 둘과 결혼하고 또 이스마엘 자손하고 결혼했습니다. 셋을 얻었습니다. 지금 이삭은 자기 아들 야곱 만큼은 정말 천국가는 사람과 결혼시키기 위해서 말한 겁니다.

2절입니다.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밧단아람은 하란이고 시리아죠. ‘네 외조부’ 외조부니까 어머니의 아버지, 한문 표현으로 외할아버지. 조부, 입니다.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브두엘의 아들 가운데 라반이 있었죠.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그 라반이 누구예요? 라반은 지금 얘기한 이삭의 부인 리브가의 오빠죠. 자기 오빠의 딸이니까 외사촌입니다.

3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생육하다’ 생육은 자녀를 낳는 거예요. 자녀가 없는 것 무자’ 이구요. ‘자녀를 낳고 번성하게 하여’ 이건 자손의 숫자들이 많아지는 형태입니다. 생육은 자손을 낳는 것, 번성은 많은 것이고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이것은 물론 오번역이에요. ‘족속’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에요. 숫자가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을 얘기하는 겁니다.

4절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이삭이 처음 자기 아버지, 야곱의 할아버지에게 주신 복을 너에게 줄 거라는 거예요. 그 복의 내용이 나오는 겁니다.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지금 이삭이 복을 주는 야곱 너만이 아니라 너와 함께 너의 자손들에게도 준다는 겁니다. 이 복은 야곱에게만 준 복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동시에 준 복입니다.

5절입니다.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아브라함이 보낼때는 굉장히 길게 썼는데 여기선 짧아요. 왜 짧을까요? 야곱이 생략한 게 아니라 야곱이 집을 빨리 찾은 것을 또한 의미합니다. 야곱이 굉장히 영특함을 말해요. 우리가 뭘 찾을 때 영특하면 빨리 찾아요. 사실은 찾기 어렵잖아요. 야곱은 굉장히 빨리 스피드 합니다. 야곱은 굉장히 머리가 좋았던 것 같아요. 빨리 찾고 인생이 스피드하게 진행돼요.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원래 브두엘은 아람 사람이 아니죠. 아람 사람은 원래 셈의 후예 다섯 번째 아들이 아람인데 근데 여긴 뭐예요? 이미 아람어를 배웠다는 것이고 드디어 히브리민족이 아니었다는 것, 영적으로 탈퇴한 것을 말합니다.

6절입니다.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야곱이 드디어 갔어요. 가서 라반 집에 들어갔습니다.

7절입니다.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절입니다.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현재 헷 족속의 두 딸과 결혼했는데 뭐예요? 두 며느리가 이삭과 리브가에게서 만족이 안돼요.

9절입니다.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원래 느바욧은 이스마엘의 첫 번째 장남입니다.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머리를 썼어요. 지금 가나안 족속은 싫어하니까 혹시 이스마엘 딸들은 낫지 않나 생각한 거예요. 이스마엘 딸들이 낫지 않나 생각했는데 사실은 뭡니까? 의미는 없어요. 이런 거예요. 카톨릭 교인과 결혼했는데 부모가 싫어해요. 그러니까 뭐예요? 오순절 성령 운동하는 순복음교회 교인을 얻었어요. 역시 싫어해요. 다 지옥 가는 사람이에요. 지옥 가는 사람인데 에서가 볼 때는 ‘이 교파가 안 맞나 이게 우리가 교파가 안 맞아서 싫어하는 건가?’ 역시 에서의 mistake입니다. 잘못입니다. 아니 천국 가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 지금 야곱을 보낸 건데 목적이. 다시 말하면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찾으러 간 건데 목적인데 에서가 생각할 때는 이스마엘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왜? 이스마엘 자손도 계속 제사법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아브라함의 그 여섯 아들들도 에서가 볼때 예배드렸기 때문에 에서가 볼 때는 분명히 이스마엘 자녀들도 자손이 믿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 정도로 영적인 어둠을 말합니다.

10절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자, 브엘세바에서 이삭이 살았죠. 드디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길을 묘사하는 거예요.

11절입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가는 길에 브엘세바에서 가는 길에 현재는 어디입니까? 벧엘이에요. 벧엘이 어디 있느냐? 사해가 있으면요 사해 한 100 km 떨어진데가 헤브론입니다. 그리고 헤브론 밑으로 가장 밑에 브엘세바입니다. 그 다음에 사해 위쪽에서 약간 아래 쪽이 예루살렘 입니다. 약 100km 되고요.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바로 17km 위쪽이 바로 벧엘입니다. 벧엘에서 좀 더 올라가면 세겜이 나오고 벧엘에서 올라가면 사마리아고요 한 쪽은 유다 수도인데요. 지금 간거리가 110km정도를 이동한 거예요. 거리가 아브라함은 3일 걸렸는데 야곱은 몇 일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야곱은 어쩌면 스피드하게 아마 첫날일 확률이 큽니다. 우리가 첫날 제일 잠이 안와요. 둘째 날은 잠이 잘 와요. 그래서 분명히 첫날일 확률이 커요.

12절입니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자, 지금 꿈에 봤는데 사닥다리가 있죠. 사닥다리는 뭘 말합니까? 사닥다리는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는 걸 말합니다. 천사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 사정을 아뢰며 우리를 매일 하나님 앞에 비춥니다.

13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그 위’가 어디에요? 사닥다리 위죠.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지금 가야 할, 가고 있는 하란을 주겠다는게 아니라 네가 여기를 떠나고 있는데 이 땅을 주겠다는 거예요.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약속이에요. 그래서 ‘이 땅을 줄것이다’ 하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은 참 아이러니해요. 하란에서 올 때 말하지 않고 갈 때 말해요. 이삭도 그랄 땅에 갈 때 가나안 땅을 얘기해요. 지금 야곱도 하란 갈 때 얘기해요. 하나님께서는 미리 항상 말씀하십니다. 모든 예언들이 그 전에 일어납니다.

14절입니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이것은 이 땅을 얻는데 땅은 가나안땅을 말씀하셨죠. 혈통적인 네 자손만이 아니라 비혈통적인 자손도 이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지금 야곱이 사실은 가나안 땅에서 오는 게 아니라 가는 입장인데 하나님께서 야곱한테 ‘내가 너를 돌아오게 할게’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영적인 땅 구원의 땅, 이 구원의 땅에 오게 되는데 하나님 섭리와 예정가운데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겁니다. 우리는 영적인 크리스천이 되어야만 구원받습니다. 100%에요. 육에 속할 때는 구원 못 받아요. 그 단계를 통과시키고 영적인 사람으로 우리를 바꿔 주십니다. 나를 위해 안 살아요. 더 이상 내가 내 목적이 아니에요. 내가 내 삶의 목적이 아니에요. 뭐가 목적이냐?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모든 걸 드립니다. 그게 바뀌는 거예요. 실제로 야곱은 이게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절입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사실 ‘허락’ 이것도 오번역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 말한것’이에요.

16절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지금 야곱이 깼어요. 근데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가나안 땅에 거기 계신거예요. 이런 일은 하란에서 앞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육에 속할 때는 하나님의 이런 깊은 계시가 오지 않습니다. 하란에 있을 때는 야곱에게 이런 게 한 번도 안와요. 벧엘은 가나안 땅의 거의 중심부에요. 예루살렘 바로 위쪽이에요.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은혜의 땅에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야곱이 드디어 하나님이 이 땅에 함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17절입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참 표현이 재밌잖아요. 하나님 만나면 우리가 좋다고 그러잖아요. 근데 두렵데요. 맞는 표현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에게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나님 모든 음성도 두려운 말들이에요. 하나님의 음성은 천둥 소리와 같고 무서워요. 가장 정확히 만난 거예요. 유사 기독교는 뭐예요? ‘아우, 너무 좋았어. 하나님 너무 좋아. Oh, good’ 이건 유사 기독교에요. 아니에요. 하나님만나면 하나님 엄청 무섭습니다. 바른 만남이에요. 우리가 ‘경외하다’ 뭐예요?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으로 존경하는 거거든요. 이 두려움이 온 거예요. 야곱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와요. ‘두렵도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가나안 땅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땅입니다. 내 마음대로 내 시간도 내 생각도 내 물질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땅에서는 내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입니다.

18절입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자기가 가졌던 베개를 가지고 기둥을 세우고 뭐예요? 지금 성전이에요. 원래 이 당시만 하더라도 이방신전이 굉장히 웅장했죠. 어마어마한 기둥으로 성전을 짓습니다. 야곱은 자기 베개로 성전을 지어요. 웃기잖아요. ‘아, 야곱 진짜 쪼잔하다’ 그잖아요. 이거 뭐 이방신전도 어마어마한 돌을 가지고 성전 짓는데 야곱이 왜 이럴까? 이건 뭘 의미합니까? 바로 우리의 삶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식할 때 하나님의 어떤 종교성에, 그 교회 가니까 어떤 예배 가니까 교회를 크게 짓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계십니다. 우리랑 너무 밀접해서 잠을 잘 때도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에요. 지금 야곱이 뭘 깨달았냐면 ‘나는 하나님이 먼 줄 알았고 하나님이 특별한 줄 알았는데 세상에, 잠을 잘 때 꿈에 나타나셨어요. 어, 여기 하나님의 집이네’ 어, 그럼 뭐예요? 내가 잠을 잘 때 하나님을 만났는데 뭐예요?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삶에 하나님이 나와 늘 동행합니다.

19절입니다.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졀입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하란에서 삶이 앞으로 몇일인지 모르지만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구에요. 야곱이 간구를 안해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왜? 구원자니까. 근데 야곱은 뭐예요? 마음이 ‘아, 먹고 살까? 내가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이 있었나 봐요. 우리도 이런 마음이 많아요. ‘내가 과연 결혼이나 할까? 내가 과연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좋은 직장 가질 수 있을까?’ 많이 합니다. 근데 하나님이 이걸 죄악시 여기지는 않아요. 야곱은 모드가 뭐예요? 아직은 육적인 모드기 때문이에요.육적인 모드에서는 육을 추구합니다. 육을 추구하니까 육적인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하나님, 오가는 길에 먹을 것 주시고 옷을 입혀주시면’ 옛날에는 옷이 큰 거였으니까 ‘주시면’하고 소원합니다.

21절입니다.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어떤 이상한 해적 만나지 않고 이런 도적 안 만나고 잘 무사하게 안전을 추구해요. 사실은 기도 안 해도 되는 문제에요. 근데 야곱 마음속에 이것이 중요해요. 아직 육적인 겁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그러면 하나님이 된다는 거예요. 아직 육적이에요. 하나님이 그리 안 해도 하나님이신데 나에게 먹을 걸 주셔야 하나님이시고 또 나에게 안전을 주셔야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22절입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드디어 돌아왔을 때 성전 안에 거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집으로서 거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십일조라고 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렸죠. 누구에게? 멜기세덱. 누굽니까? 예수님이에요. 직접 드렸어요. 근데 야곱은 예수님을 못 만났어요. 그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아직도 레위지파가 몇 대 후에 나타나고 야곱은 드릴 사람이 없어요. 어떻게 드립니까? 근데 재밌는 게 뭐냐면 십일조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이에요. 이게 키워드입니다. 가나안땅에 거하면 우리는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십분의 일이 뭐예요? 어떤 사람이 물어보죠. ‘저 당기순이익이 얼마인데요?’ ‘제가 이번에 매출 얼마인데요?’ 매출의 십분의 일이나, 당기순이익의 십분의 일이나, 영업이익의 십분의 일이 아니라 뭐냐고요? 그게 아니라 모든 것의 십분의 일. 살면서 인간관계가있죠, 또는 내가 살면서 건강하게살죠, 또 내가 현재 살아있죠, 또는 내가 이것저것 누리고 있는 게 있고 보는 게 있고 많은게있죠, 물질만이 아니라 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삶이 그게 바로 구원입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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