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26 | 창세기 26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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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26 | 창세기 26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26장 : 미혹에서의 탈출

1.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35절까지)

창세기 26장 1절입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그러니까 지금은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상태이니까 60세가 넘은 상태이고 아브라함이 75 세에 죽었기 때문에 현재 75 세가 넘었을 확률이 큽니다. 왜냐하면 1절에서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라는 말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흉년들어서 애굽으로 갔다가 돌아오죠. 똑같이 이삭 때에도 ‘큰 흉년이 들었더니’ 뭡니까? 이것은 아브라함이 죽었을 확률이 큰 이야기이고 다시 이삭에게 똑같은 경우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들었더니’ 이삭도 똑같이 흉년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이삭이 그랄로 가서’ 그랄은 브엘세바 남쪽 좌측 35 km 지점이죠. 그러니까 애굽은 불신의 땅인데, 과연 그랄이 어떤 지역이냐 이거예요.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아비멜렉은 사람이름이 아니라 블레셋 말로 왕이라는 말이죠. 애굽은 '파라오' 그리고 블레셋은 '아비멜렉'입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이삭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삭이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데 하나님이 왜 만나느냐? 하는 겁니다. 흉년들 때 우리는 기근이 올 때 내가 갖고 있는 영적인 페이스를 잃어버리고 또 다른 무엇을 결단하는데 그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위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주안에 거하면 흉년이 없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때에 흉년이 들때 뭐가 들어옵니까? 드디어 불안한 마음으로 애굽으로 갈려는 마음이 있으니까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죠. 지금 그랄 땅에 머물고 있는데 그래도 이것도 사실은 위험한 겁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과연 그랄일까요? 아직은 모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애굽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랄 아니면브엘세바 원래 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 아브라함에게 했던 것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 동일한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맞는데 가나안 땅이 어디까지가 가나안 땅이냐?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 의 답은 가나안 땅입니다.

3절입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자, 지금 ‘이 땅’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현재 그랄 땅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가나안 땅일 수 있는데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뭡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 ‘여호와 삼마’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임마누엘’ 약속을 주십니다.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원어로는 ‘이 모든 땅’이 아니라 ‘이 모든 지역’이예요.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며’

4절입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모든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뭡니까? 지금 약속들이 압축된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이 압축됐어요. ‘하늘의 별과같이’ 창세기 12 장에 나오죠.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이것은 창세기 18 장에 나오죠. 압축됐어요. ‘네가 내 말대로 이 땅에 머물면 말이야 내가 자손을 주어서 복을 주고 또 천하 만민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거야’라고 압축된 말씀을 주십니다.

5절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흉년들어서 내려오니까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주십니다. 지금 ‘내가 지시할 땅’의 본질이 뭐냐는 거예요. 내 말에 순종하고, 내 음성에 순종하고자, 하나님을 만나면 성경으로 만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천국이 멉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천국갑니다. 맞아요. 하지만 하나님은 성경 어디를 뒤져봐도 천국 가는데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한 명도 없더라구요. 그때는 성경시대 아닙니까? 그때는 특별 계시시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어떤 인물들도 하나님 구전된 말씀을 배우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가운데 한 사람도 천국 간 사례가 없어요. ‘그는 말이야 그가 왜 천국 갔는지 알아 내가 왜 그를 사랑한 줄 알아? 그는 내 목소리에 순종하고 내 명령과 그리고 계명과 그리고 율례와 법도를 지켰어’ 라는 것입니다. 이게 가나안땅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땅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땅이 아니라, 가나안땅은 내가 기도로 응답받는 땅이 아니라, 가나안땅은 내가 하나님을 만족시켜주는 땅입니다.

6절입니다.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그 땅’이라는 장소가 그랄이냐? 아니면 브엘세바냐?가 아직 결론이 안 난 상태예요. 제가 볼 때는 ‘그래 그 땅이 여길 수도 있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만약 이삭이 그 때 눈치를 체고 ‘여기가 아닐 거야’했으면 올라갔겠죠. 그런데 거긴 뭐예요? 기근이 있는 땅이에요. 여긴 기근이 없는 땅이에요. 그래서 머무른 것입니다.

7절입니다.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비슷하죠? 아브라함도 자기 이복 누이를 열 살 아래 누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리브가는 사실은 자기 아버지의 형제의 손녀거든요. 사실은 자신이 삼촌 뻘이지만 그 당시 이 사람들은 그런 개념이 없으니까 자기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친척이니까 누이라는 거죠. 똑같은 상황이에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8절입니다.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껴안았다’ 원어로는 ‘껴안았다’가 아니고 ‘장난치다’예요. 어떤 장난이냐면 이성끼리의 장난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아마 이때 이삭과 리브가가 이성적인 어떤 장난을 한 것 같아요. 뭐 껴안았다고 하지만 그 때 창문에 유리창이 없죠. 중동지방은 2 층이 다락방이고 위에서 밖에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우리로 치면 껴안는 거고 그렇게 장난치는 것을 본 것입니다.

9절입니다.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뭡니까? 자기 신변에 안전을 생각합니다. 그랄은 내 중심적인 땅이라는 겁니다. 그랄은 하나님 중심이 아닙니다. 그랄은 인간중심이에요. 그것을 보여 주는 거예요. 아직 이삭이 어떤 사람이냐 이삭은 구원의 완성이 안된 자기중심적인 사람입니다.

10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이르되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내와 동침할 뻔하였도다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 뭡니까? 이삭의 신앙은 아직까지는 죄를 안 짓는 신앙이에요. 애굽은 죄짓는 신앙이에요. 불신의 땅이에요. 그러나 그랄은 아직은 자기중심적 신앙을 하는 단계입니다.

11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에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나 그의 아내를 범하는 자는 죽이리라 하였더라’ 율법이죠. 지금 율법대로 순종합니다.

12절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이삭이 지금 백배나 얻었어요. 하나님이 주셨어요. 하지만 이 복이 진짜 복일까요?

13절입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절입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이삭이 이제까지 가나안땅 브엘세바에 살 때는 그저 그랬는데 그랄 땅에 와서 드디어 돈이 막 되는 거예요. 농업에다가 목축업까지 손대서 커진 거예요.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종도 많아요.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절입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매웠더라’ 뭐예요? 어떤 땅이냐 아직 마음에 시기심이 있는 땅입니다. 겉으로 외적인 죄는 안 지어요. 십계명을 준수합니다. 그러나 뭐예요? 자기 마음에는 자기중심적이고 아직 시기심이 있고 물질에 대한 욕망이 있는 땅이에요. 물질의 욕망이 나를 지배하는 땅이에요. 이 땅이 뭐냐 그랄 땅이에요. 가나안땅 아닙니다.아직 이삭의 마음에는 욕망이 있어요. 블레셋이 ‘저거 잘된단 말이야’ 하고 시기 질투하여 우물을 매워버립니다.

16절입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지금 아까 우물은 아브라함이 판 우물입니다. 뭐냐면 아브라함이 똑같이 팠단 이야기입니다.

17절입니다.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드디어 그랄 평지에 있죠. 평지에 있다가 다시 그랄 골짜기로 갑니다. 골짜기로 가서 머뭅니다.

18절입니다.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이삭이 지금 똑같은 답습을 하는 거예요. 지금 평지에 있었을 때 농업을 했었는데 거기서 아브라함이 가졌던 우물을 갖고 있었고 블레셋 사람이 그것을 매워버렸죠. 다시 그랄 골짜기에 갔어요. 가서 또 팠어요. 어떻게 팠습니까?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이에요. 그걸 똑같이 다시 팝니다.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절입니다.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샘물을 얻었다는 얘기죠.

20절입니다.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다툼이 있는 땅입니다. 다툼, 시기가 있어요. 골짜기를 가서 또 팠는데 목자들끼리 또 다툽니다. 이삭은 아직 다툼의 신앙이에요. 아직 욕망이 있고 내 중심적이고 다툽니다.

21절입니다.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 이게 두 번째입니다.

22절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드디어 안 다투는 거예요.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뭐예요? 드디어 안 다툽니다. ‘번성하리라’ 번성이 보장된 거예요. 자, 만약에 여기서 끝나면 우리는 처음에 ‘내가 지시하는 땅’이 그랄 땅이돼야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서 끝나질 않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 반전이 일어나요.

드디어 23절입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성경에 왜 올라갔는지 안 나와요. 자! 이게 중요합니다. 이삭이 세 번째 때 멈췄다면 이삭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서만 구원을 주십니다. 가나안 땅이 뭐예요? 신약에서는 예수안이에요. 구약에 가나안땅이 신약 예수안이고, 예수안이란? 구원입니다. 예수안! 로마서 8장 말씀 예수안이에요. 그 예수안만 구원인데 그 예수안에 들어오는 비결을 이삭이 깨달은 거예요. 이삭이 지금 그 다음 브엘세바에 올라갈 때 다투거나 문제가 전혀 없었어요. 근데 이삭이 그냥 원래 살던대로 돌아갑니다. 이삭이 돌아보니까 거부가 되었고 다른 것도 얻었고 우물도 지금 다 파서 성공 상태에 있는데 이게 아니라는 생각을 얻게 된 거예요. 이삭은 일부러 올라갑니다.

24절입니다. ‘그 밤에’ 자, 올라간 ‘그 밤’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지금 잘했다고 나타나십니다. 처음에는요? 처음에는 가나안 땅에 있어 내려올 때 나타나시죠. 그 때는 ‘너 잘해야 돼’ 였고, 지금은 ‘너 잘했다! 네가 드디어 내 말을 이해했구나’하고 나타났어요. 지금 브엘세바로 올라온 그 밤이에요. 아마 잠을 못 잤겠죠. 브엘세바는 이삭이 태어고 자란 장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오고 리브가도 같이 있던 장소가 브엘세바입니다.

25절입니다.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드디어 제단을 쌓는데 언제 이삭이 뭐 제단을 안 쌓았겠어요? 모태 신앙이 사실 쌓았을 거예요. 그러나 뭐예요? 이삭의 예배가 드디어 열납됩니다. 어디서 브엘세바에서 그래서 가나안땅은 어디냐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예요. 가나안 영역이 ‘브엘세바에서 단까지’가 가나안땅이며 이 가나안땅에 우리는 거해야 합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26절입니다.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27절입니다.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이렇게 떠난 이유가 나와요. 뭐냐면 블레셋이 이삭을 미워하는 거예요. 그게 약간의 이유가 됐을 거예요. 우리가 미혹과 참교회는 같이 될 수 없습니다. 미혹교회와 참교회가 섞일 수가 없습니다. 대충 비슷해요. 교리는 똑같고 다 똑같은데 뭐가 다르냐 그 뿌리가 달라요. 뿌리가 인간중심이냐 미혹은 잘되는 것 복받는 것 또 종교적인 욕망들 이거예요. 참교회는 오직 순종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거예요. 달라요. 그래서 그들이 계약 맺으러 옵니다.

28절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드디어 계약절입니다.

29절입니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드디어 서로 불가침협정을 맺습니다. 브엘세바도 블레셋 영향 하에 좀 있는 겁니다. 그때에 이제 이삭이 커졌는데 더 커지면 뭐예요? 싸울까봐 지금 미리 와서 조약으로 우리는 서로가 싸우지 말자 너 우리와 다르다 하고 맺으러 온 거예요. 뭡니까? 그랄땅과 가나안땅은 다른 땅이라는 거예요. 같다면 계약을 뭐 하러 맺어요? 다른 땅이에요. 우리가 미혹과 참교회는 다른 겁니다.

30절입니다.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31절입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32절입니다. ‘그날에 이삭의 종들이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이삭에게 와서 알리어 이르되 우리가 물을 얻었나이다 하매’ 드디어 물이 나왔습니다. 어떤 물일까요? 성령의 생수인데 막히지 않습니다. 그 전에 우물들은 자꾸 막혔어요. 신앙을 하는데 참 만족스러운데 다시 또 곤고해져요. 미혹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땅에 오면 생수가 막히질 않아요. 늘 충만합니다. ‘내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치리라’ 늘 충만합니다. 왜냐구요? 가나안땅이기 때문이에요. 여기는요 우물이 막혔다는 얘기가 없어요. 왜? 우물이 계속 나와요. 성령의 생수가 우리에게 계속 솟구칩니다. 이게 뭐예요? 이게 우리영혼에 행복을 주고 줍니다. 요한복음 수가성 여인에 주신 똑같은 말씀이에요. 이 여인이 드디어 발견한 거예요. 야곱의 우물 어떤 거예요? 비슷한 거예요. 그거 막혀요? 안 막혀요. 드디어 욕망이 사라지면 우린 더 이상 죄에 종노릇하지 아니하고 더 이상 욕망의 종되지 않습니다. 욕망이 나를 끌어가지 않아요. 드디어 항상 주님의 생수가 내게 넘쳐서 뭐예요? ‘내 배에서 생수가 넘쳐나리라 생수가 강처럼 넘쳐나리라’ 말씀하신 겁니다.

33절입니다. ‘그가 그 이름을 세바라 한지라’ 아, 재밌어요. 원래 아브라함 때 그것을 브엘세바라 불렀다고 되어 있어요. 원래 ‘브엘’은 원어로 ‘우물’이예요. ‘세바’가 이름이에요. 그런데 그 때 그 샘을 부른 게 아니라 그때는요 그 지역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오늘은 달라요. 그 지역이 아니라 이 우물에 대해서 이 샘에 대해서 ‘세바라 한지라’ 자, 이삭은 뭐예요? 이 지역이 가나안땅이 브엘세바가 된 이유가 뭐냐는 거예요. 왜 가나안땅이냐 바로 ‘이 세바때문이야 이 우물때문이야’라는 거예요. 이제까지 우물은 어떤 우물이에요? 막혔지만 ‘이건 막히지 않아 이거는 세바야’ 하고 그 우물을 세바라 부릅니다.

다음절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이 오늘까지 브엘세바더라’ 지금 아브라함도 ‘브엘세바’라고 그 지역을 명명했습니다. 네게브사막의 가운데가 브엘세바인데 지금은 아브라함과 또 다른 우물입니다. 우물인데 ‘이게 세바야’ 우물 때문에 브엘세바가 되었고 가나안땅이 뭐냐 말씀에 순종하면 욕망을 모두 버리면 드디어 우리 안에는 넘치는 생수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는 약속을 의미합니다.

34절입니다.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지금 에서는 일부이처예요. 범죄를 합니다. 근데 누구 딸입니까? 헷 족속이에요. 아브라함 때 헷 족속 등장하죠. 아브라함 때 헷이 나옵니다. 이름이! 헷의 아들들이예요. 자! 지금 이삭 때 헷 족속이 뭐예요? 가나안땅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유지가 됩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실패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그랄 땅이에요. 우리가 볼 때는 성공이죠. 하지만 영적으로는 실패한 것입니다.

35절입니다.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이게 뭘까요? 드디어 하나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볼 때 ‘너, 이삭! 네가 거기 내려갔지. 나 역시 근심했어’ 이런 거예요. 지금 이삭이 철이 들어서 근심할거예요. ‘아~ 제가 지금 왜 저러냐. 저거 지금 죄짓고. 제가 지금 세상적인걸 욕망을 따라가는데’하고 근심하죠. ‘아니야! 네 모습이야’라는 겁니다. 지금 이삭은 철이 들어서 근심했지만 하나님이 이삭 때문에 엄청 근심했단 얘기예요. 언제까지? 브엘세바에 오기까지 엄청 근심한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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