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18 | 창세기 18장 : 인간사랑=하나님사랑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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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18 | 창세기 18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18장 : 인간사랑=하나님사랑

1.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33절까지)

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그냥 마므레 평원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족장 마므레가 있는 평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여기서 장막은 텐트입니다. 중동은 벽돌이나 초가가 아니고, 텐트로 되어있죠. 날이 뜨거울 때이니까 아마 오후 때일 것입니다. 중동은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덥습니다.

2절입니다.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타나셨다고 했는데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지금 사람 세명을 본 것입니다.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지금 그세 명에게 달려가서 몸을 굽혀 영접했습니다.

3절입니다.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주여’란 무엇입니까? ‘주여’는 하나님이나 상전이나 왕에게 쓰는 표현이죠. 지금 아브라함이 본 이 세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인식했을까요? 사람으로 인식했을까요? 분명히 여기선 사람으로 인식한 것입니다. 바로 다음 구절 때문입니다.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하나님의 영이라고 생각하고 만났다면, 그동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 떠나가신 적이 한번도 없죠? 그러므로 이것은 아브라함에 눈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에 이 구절이 없다면 분명히 이것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여기선 아브라함은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지나가지 말란 말을 한 것입니다.

4절입니다.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중동에서의 인사입니다. 손발을 씻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관습 대로 손발을 씻을 물을 첫번째로 갖다 줍니다.

5절입니다.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지나가소서라고 또 하죠? 지금 사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떡도 준비합니다.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한 스아가 7.3 리터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세 스아면 20 리터 정도 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우리 옛날에 빨간 다라 정도의 크기면 20 리터가 되거든요. 세 사람에게 꽤 많은 양입니다.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분명히 이것은 떡에 이스트를 넣은 것이 아니겠죠. 무교병이겠죠. 부풀지 않는 떡이었을 것입니다.

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소 가운데 송아지가 가장 맛있습니다. 닭도 어린게 맛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닭으로 논문을 쓴적이 있습니다. 3천마리 정도 실험을 했었는데 4주 정도된 닭은 너무 맛있어요. 12주 정도된 닭까지 아주 쉽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 정도로 송아지가 맛있습니다. 송아지를 먹을 기회는 저희에게 없어요. 왜냐하면 다 성장한 다음에 500kg 이상의 소를 먹기 때문에 송아지 맛은 본적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상상 속의 이야기죠. 우리나라에서 송아지 고기 먹어본 사람 없습니다. 강원도 사람 이외에는요. 그러니까 송아지는 맛이 살살 녹을 것입니다.

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우유를 끓이면 상층부에 뜨는 게 있습니다. 그 뜨는 게 바로 지방층인데, 이 지방층이 굳으면 버터가 됩니다. 여기서엉긴 젖이 뭐냐하면 이 당시에 아브라함도 버터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버터라는 이름이 없었을 뿐이지, 아브라함 그 당시에 떡도 먹고, 송아지 고기도 먹고, 버터도 먹고 한 것입니다.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서매’는 아브라함이 차려 놓고 옆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시중 드는 것입니다. ‘그들이 먹으니라.’ 사실 아브라함이 출산을 남겨 두고 맨 마지막 남겨둔 과제가 이 부분이었어요. 지금 세 사람이 누굴까요? 분명히 예수님과 두 천사에요. 분명한 답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실 때에는 무조건 예수님이에요. 여호수아도 구제자를 만나는데 그 때도 예수님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도 보았거늘’ 우리가 만나는 형체 있는 분은 다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형체가 없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사실은 예수님은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식을 못했어요. 그리고 옆에 천사를 만난 거에요. 아브라함은 사람으로 알고 대했는데 대하기를 누구를 대하듯 했습니까? 하나님 대하듯 했던 것이에요. 이게 아브라함이 복받은 비결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다음에 마지막 작업이었어요. 1년 있으면 출산하는데, 2개월쯤 지나서, 아브라함이 안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사람으로 나타나신 거에요. 그리고 아브라함을 보셨는데 아브라함이 지나가는 나그네를 하나님 같이 섬긴 거에요. 얼마나 하나님이 기뻤을까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내용은 종교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것을 좋아하죠. 기도를 10시간 합니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찬양을 너무 뜨겁게 합니다. 말씀을 모르는게 없어도 안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옆에 있는 주변인들을 섬기는데 하나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한테 약속을 한 다음에 아들을 못 주신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못 섬기면 너무 마음 아파하십니다. 만약에 아내가 남편한테 못 되게 굴면 하나님께서 아파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라도 관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행동으로 아파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잘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9절입니다. ‘그들이’ 그들이 누굽니까? 앞에 세명 입니다. 바로 예수님과 천사 둘이죠.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몰랐을까요? 알았겠죠. 그런데도 묻는 것입니다.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절입니다. ‘그가’ 그가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르시되 내년 이맘 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천사가 말 할 순 없습니다. 앞으로 일어 날 일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드디어 선포를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어쩌면 10개월 뒤를 말씀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그두라와 재혼한 뒤에도 6명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아직 끊어지지 않고 사라만 끊어진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이 때 끊어졌던 사라가 이 주간에 배란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10개월 뒤라고 생각합니다.

11절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난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절입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여기 즐거움은 어떤 성적 Fantasy(환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내 주인’ 즉, 아브라함도 늙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기서 즐거움은 출산의 즐거움입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지금 사라는 자기가 생리가 끊어짐을 알고 믿음이 약해서 웃었죠. 하나님은 능력의 한도가 없으십니다. 다만 그 능력에 한도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믿음의 한도입니다. 하나님이 왜 홍해를 갈랐을 까요? 모세의 믿음의 한도에요. 성경에, 하나님은 우리가 그 믿음만큼 안되면 절대로 역사한 사례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절대 역사하지 못하십니다. 이번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역사가 일어났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해를 멈추셨습니다. 즉, 우리가 믿는 Capacity(능력)만큼의 역사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정도 까지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고 행할 수 있느냐, 내 생각의 가능성 만큼을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않으세요. 여기서 한계란, 믿음의 한계입니다. 사라는 못 믿었지만 아브라함은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것을 지나갈 때에 우리가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 까지 가는것 입니다. 얼마만큼 믿을 수 있느냐? 그래서 사람은 상상을 좋아하게 되어 있습니다. 상상력을 많이 동원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상하고, 우리가 꿈을 꾸고, 우리가 계획하는, 그 법 위에 역사하실 수 있지, '불가능하다' 라고 생각해 버리면 하나님 역시 '불가능하다' 라는 답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하고자 할 때는 처음에는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Capacity(능력)가 절대 우리의 한계에 갇히길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무한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굉장히 무한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어떤 가능성이란게 굉장히 무한한 것입니다. 현실은 아닌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없는 걸 하시고, 변화시킬 수 없는 걸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나는 변화 될 수 없는 놈인 가봐’ 하고 쉽게 포기합니다. 아닙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나는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

15절입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16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그 사람들은 누굴까요? 천사들 둘 이에요. 나중에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동성애를 요구하죠? 그 다음에 나오죠? 그 천사가 이 둘입니다. 남자입다.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다시 예수님만 남은 겁니다. 지금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러 갔고 드디어 예수님만 남아서 단독으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번역이 약간 축약된 것인데, 크고 강한 입니다. ‘천하 만민은’ 원문에서는 '땅에 모든 나라는' 입니다. 우리는 ‘그로 말미암아’ 아브라함 안에서 입니다. 즉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님 안에서 입니다. ‘복을 받게 될것이 아니냐.’ 지금 아브라함에게 ‘너는 엄청난 나라가 되고 땅의 모든 나라는 너 때문에 복을 받는다 그렇지 않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이 알고 있는 내용이죠. 그런데 그 다음 절이 오늘의 주제 '절' 입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이 강대한 나라가 되고 땅에 모든 나라가 그를 통하여 복을 받는 가에 대한 방법론이 다음 절에 나옵니다.

19절입니다. 이 구절이 너무 오역이 많기 때문에 제가 정확한 구절로 바꾸겠습니다. 원어로 ‘내가 알기 때문인데’ 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강대해지는 이유, 복 받는 이유를 내가 알기 때문인데 입니다. 무엇을 아느냐?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그가 명령할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아브라함이 모든 나라의 복의 근원이 되는 방법이 뭐냐? 아브라함이 명령 할 것이다! 그의 자녀와 그 가족에게. 무엇을 명령하느냐?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원어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비결, 구원을 받는 비결이 여호와의 법도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법도를 지켜서 정의롭게 살고 공정하게 살아라’라고 아브라함이 명령할 것을 아신 다는 말씀입니다.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법도 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롯과 무엇이 다르냐? 롯은 혼자 구원 받지만, 아브라함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아브라함은 자기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온 그 내용을 자기 자녀와 그 가족들에게 명령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게 바로 아브라함이 모든 민족의 조상되게한 이유가 되었단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남들에게 복의 근원이 된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는 내가 먼저 법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뭡니까? 바로 율법이에요. 율법은 우리가 살아갈 방법론 입니다. 어떻게 살까요? '하나님 가르쳐주세요.' 이런 말 할 것 없습니다. 성경에 다 써있습니다. 율법이 써있어요. 모세 5경에 다 써있습니다. ‘그날 일한 잣은 그날 주어라.’ 이제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중심입니다.

2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죄악이 무겁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무게로 달아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실 때는 죄가 무거워져야 해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그냥 놔두실까요? 왜 그 악한 인간을? 왜 우리 자녀들을? 아직 죄가 안 무거워서 그래요. 죄가 무거워지면 그 무거움 때문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은 갑자기 옵니다. 우리는 때로 죄를 지으면서 무감각할 때가 있어요. 아직안 무거워진 겁니다. 무거워 지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무겁다고 하는 것입니다.


21절입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으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하나님이 모르실 수 있나요? 다 아시는데? 그럼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시기 전에 결심하시는 내용이에요. 하나님 마음에 우리를 징계하거나 심판할 때 쉽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땐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하실 것 같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힘들어 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릴 때 기분 좋아합니까? 가슴이 찢어지죠.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때에는 하나님도 굉장히 힘드시기 때문에 결심하시는 과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22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지금 그대로 예수님 옆에 계신 것 입니다.

23절입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아브라함이 질문을 합니다. 의인이 있죠, 롯도 있고. 지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심판에 대해서 반격하는 것입니다.

24절입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자, 50명이면 됩니까? 하나님!’ 하고 타협하는 거에요.

25절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아브라함이 지금 50명의 심판을 막겠다는 것입니다.

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드디어 아브라함의 탄원을 들으십니다. 이게 실제로 가능할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믿은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런 내용이에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선지자의 동의를 받으십니다. 선지자를 써서 회개를 전파하시기 때문에 선지자의 동의가 필요하십니다. 니느웨를 심판할 때 요나의 동의가 필요했어요. 요나의 동의가 필요했기 때문에 쓰신 거에요.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심판을 혼자 하신 적이 한번도 없어요. 항상 선지자로 먼저 말한 다음에 심판하십니다. 항상. 지금도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가 하나님과 타협 보는 거에요.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말 들으실까? 하지만 우리말 들으십니다. 우리의 결정,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의 의사를 엄청 좌우합니다. 우리의 태도가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는 많은 Factor(요인) 돼요. 그래서 자녀인 우리의 생각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동의를 얻고 하시는데, 지금도 우리의 동의를 얻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한테 더 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 말씀을 더잘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27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절입니다.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또 낮춥니다.

29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0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지금 아브라함이 계속 숫자를 떨어뜨리죠. 이유는 한 가지 입니다. 롯 때문입니다. 나중에 롯을 구출하러 가죠? 롯이 아브라함의 조카인데 소돔에 살고 있어요.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본, 소알 이 다섯 지역이 소돔 지역인데, 이 다섯 지역을 하나님께서 멸할 계획이에요. 거기서 롯 혼자만 의인이에요. 그런데 아브라함 생각엔 ‘롯 말고도 조금 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31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32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 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0명까지 떨어뜨립니다. 아브라함은 확신이 있어요. ‘10명은 있겠다.’ 아브라함 생각이에요. 드디어 아브라함은 기도가 성공한 거에요. 롯도 있고 롯의 아내도 있고 딸들도 있으니까 아브라함은 드디어 성공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롯 한 명만 의인이었습니다. 롯은 살아 남고, 두 딸은 그냥 덩달아 살아남고,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의인이 없단 사실입니다.

3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드디어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만나고 큰 장면이 마쳐졌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 삶의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음에 거기에 머무르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이 영적 전투의 현장입니다. 이런 사람 있어요. ‘직장 생활이 싫어.’ ‘남편 꼴도 보기 싫어.’ ‘다 좋은 데 이건 못 보겠어.’ ‘교회가 좋아.’ ‘목사님은 훌륭해.’ 이런 개 같은 년! 놈들! 굉장히 많아요. 자기가 있는 삶에 있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하는게 지혜입니다. 우리는 내가 오늘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게 뜻입니다. 마치겠습니다.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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