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40 | 창세기 40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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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0장 : 탈출 욕구에서의 자유

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23절까지)

1절입니다.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왕에게 범죄한지라’ 이것은 오번역이에요. 원래 원어는 ‘불쾌하게 하다’입니다. ‘offend’라는 단어인데 왕을 불쾌하게 한 것입니다.

2절입니다.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절입니다.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이 감옥은 정치범들을 수감하는 곳이니까 아마도 일반 백성들이 들어가는 감옥보다는 좀 좋은 곳이라 생각됩니다. 요셉도 거기 갇힌 상태죠.

4절입니다.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어쩌면 보디발은 ‘요셉이 설마?’하고 반신반의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고위급 정치범들을 섬기게 하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여러 날’은 오번역입니다. 한 기간 동안인데 한 분기나 계절을 의미합니다.

5절입니다.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지금 불신자인 두 사람이 굉장히 중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6절입니다.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절입니다.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8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사실은 굉장히 평범한 꿈인데 해석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하면서 꿈을 말해 달라고 합니다.

9절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절입니다.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절입니다.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이 상태 가지고 해석할 수 있습니까? 못해요. 그런데 아까 말한 대로 요셉은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믿었고 그걸 드디어 적용시킵니다. 꿈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고 인간적인 내 영의 꿈이 있고 마귀가 주는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것들이 분간이 됩니까? 사실은 잘 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꿈을 잘못 해석할 수 있습니다. 꿈은 원래 해석하는게 아닙니다. 꿈은 적용하는 것입니다. 꿈은 내 적용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적용할 수 없으면 버리면 됩니다. 괜히 불안해 할 거 없습니다. 참고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삶에 적용시키면 되는데 지금 요셉이 이런 꿈에 대한 해몽에서 탁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꿈을 물어봤고 드디어 해석 들어갑니다.

12절입니다.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절입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절입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자, 이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정확히 해석을 했거든요. 요셉은 해석이 틀리질 않죠. 그런데 이때 요셉의 문제가 뭐냐? 요셉이 자기를 좀 풀어달라고 그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결정적인 잘못입니다. 요셉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은 살면서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립니다. 여러 가지 감옥과 같은 환경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럴 때 우리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내가 현재 처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이 인간에게 당연히 다 있습니다. ‘이것 좀 해결해 주세요.’ 그게 소원성취에요. 이것은 신앙의 세계에서 엄청난 적입니다. 이게 우리에게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좋은게 아니에요. 우리는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하는 배우가 돼야 합니다. 현재 나의 상황 자체를 하나님의 뜻으로 보고 감옥에 있으면 죄수로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만약에 내가 지금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과는 상관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사전에 예정하시고 다 계획해서 만드시고 인도하고계십니다. 자, 우주를 만든 분이 과연 우리 인간계나 삶을 오차가 생기게, 틀리게 만들었을까요? No. 아닙니다. 내가 이해가 안될 뿐이지 사실은 가장 좋은 상황이 나한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결코 부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처한 상황을 어떤 경우라도 긍정화 시키십시오. 감사하십시오. 이것을 내가 긍정화 시키고 감사할 때, 그럴 때만이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고 그것이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로 팔려온 다음부터 총리가 될 때까지가 요셉에게는 인생의 클라이막스였습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클라이막스는 내 소원성취에 있지 않아요. 내가 굉장히 고통스럽거나 내가 원치 않는 상황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가까이 나가는 그 상태가 바로 인생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내가 처한 상황 자체를 비관하거나 그것을 안 좋게 보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굉장한 마이너스입니다. 만약 요셉이 이때 이걸 말 안했으면 더 빨리 풀려났을 지도 모릅니다. 요셉이 이때 자기 상황을 감사히 여기고 긍정하면 좋았을텐데 머리를 써서 곧바로 자기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이건 비극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감사하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처한 모든 불합리함과 고난과 역경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게 하며 나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길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인생을 걸지 마세요. 그건 시간낭비입니다. 그럼 뭘 해야 됩니까? 그 시간에 기도하고 그 시간에 하나님께 참 예배를 드리고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데 집중해야 됩니다. 우리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소원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데 온 맘을 드려야 합니다. 내 행복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의 행복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내 뜻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면 내 소원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주님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15절입니다.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여전히 요셉은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걸 모르겠습니까? 우리가 남한테 뭘 변호하고 나의 결백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직 안 된 거예요. 하나님은 결백함을 아십니다. 근데 요셉은 여전히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절입니다.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절입니다.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절입니다.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절입니다.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절입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절입니다.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자, 드디어 한명은 나무에 매달렸습니다. 사형이죠. 다른 한명은 회복되었습니다. 둘 다 바로 왕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아니, 비슷한데 어떻게 결과가 다를까요? 이게 오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실 인생이라는게 피장파장이에요. 사람은 잘해도 그저 그렇고 못해도 그저 그렇습니다. 오십보백보에요. 그런데 뭐가 운명을 결정하느냐? 이게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운명이 어떻게 갈리게 되는지를 두 명을 통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너, 봐라. 똑같은 3일 후고 똑같은 일인데 한명은 복귀돼서 왕 옆에 술 따르고 있고 똑같은 상황인데 한 명은 3일 후에 죽었다’라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은 죄인이지만 바로 왕이라는 권력자 앞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축복에 들어갈 수 있느냐 그겁니다. 그것은 내가 현재 있는 상태에서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내게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나에게 맡겨진 내 가족, 내 자녀, 내 배우자, 맡겨진 교회, 맡겨진 일, 맡겨진 공부 이런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맡겨진 이 일에 대해서 우리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맡기지 않은 일에 자꾸 부러워하고 자꾸 바라보고 그럴 거 없습니다.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23절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2년 동안 잊었습니다. 요셉은 아마 어쩌면 매일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게 해 주세요’ 그러다가 2년만에 요셉이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합니다. 인생은 내가 기도한다고 하나님께서 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기도 안한다고 안 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오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자판기가 아닙니다. ‘하나님, 주세요.’ 그러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 마음가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요셉이 하나님 앞에 ‘하나님, 난 여기 있는 게 좋아요. 여기에 당신 뜻이 있어요’하고 ‘하나님, 기도 안 할게요’ 하자마자 다음날 석방 되었을 것입니다. 제 추론입니다. 어떤 축복을 바라지 말고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더 나은 직책이나 더 나은 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그걸 바라볼 건 없습니다. 항상 현실에 충실하면 됩니다. 요셉이 기도를 2년 열심히 하다가 기도를 안 하게 된 그 때 드디어 석방이 된 것입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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