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35 | 창세기 35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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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35 | 창세기 35 | 해설 : 사복음교회 박경호 목사 |

창세기 35장 : 벧엘을 떠남으로 온 징계들

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29절까지)

1절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일어나라’하면 대부분 항상 밤임을 의미합니다. 밤이니까 밤에 잠을 자든지 아니면 밤에 묵상할 때 일어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첫마디가 ‘벧엘로 올라가서’가 아닙니다. ‘올라가라’입니다. 번역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압축해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라고 했지 원래는 ‘벧엘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 거주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가서 거주하라 하셨는데 야곱이 나중에 거주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 과정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때 일어나는 문제들을 짚어 볼 수 있습니다.

2절입니다.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당연한 것이죠. 지금 벧엘로 가서 거주할 뿐만 아니라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데 당연히 우상 신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죄를 사함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진실된 예배를 드리기 위한 기초과정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 받고 끊임없이 정결케 하는 일입니다.

3절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수십 명의 자기 아들들과 손자들과 종들에게 내가 여기로 가는 이유가 ‘내가 여기 하란에 올라 올때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다’ 하고 벧엘로 올라가는 명분을 내세웁니다.

4절입니다.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문화가 많이 바뀌었어요. 옛날 아브라함 때에만 해도 코걸이였다가 드디어 귀고리로 바뀌었습니다. 복수로 earrings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 때 들어와서는 여성들의 이런 문화들이 귀고리로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입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지난번에 히위 족속이라든가 또는 브리스 족속들이 추격을 안 한 상태입니다.

6절입니다.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거리가 세겜성에서 벧엘까지는 한 19km 정도 되고 벧엘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는 한 17km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부터 벧엘까지는 10km정도 됩니다. 여기를 지금 단체로 행진하여 가는 중입니다.

7절입니다.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지금 야곱이 내가 다시 돌아올 때 여기다가 제단을 쌓겠다고 약속한 그 장소를 엘벧엘이라고 명한 것입니다. ‘엘’은 ‘하나님’ 이죠.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벧’은 집이고 ‘엘벧엘’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하나님이 그 진정한 예배를 받으셨던 벧엘이 바로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진정된 예배처는 바로 하나님의 집,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바로 진정한 예배처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겜성은 하나님께서 말씀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디나 강간사건이 일어났고 지금 야곱이 깨닫고 드디어 다시 이리로오게 되는데 사실은 처음부터 이리로 왔어야죠. 참된 예배처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엘벧엘을 발견해야 되는데 놓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말씀을 통해 보여 주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아니, 갑자기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요? 이삭이 리브가를 데리고 올 때 유모랑 같이 왔거든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하란에서 내려온 사람입니다. 함께 합류했는데 어떤 일이 생겼느냐? 비참하게 죽게 되는 거예요. 근데 그 장소가 중요합니다. 장소가 어디냐? 벧엘 아래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벧엘 아래에서 내려오고 있는 중에 죽은 거예요.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신 것입니다. 왜 데려갔을까요? 벧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물질적 손실이나 살면서 어려움은 큰 문제가 아닌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것은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건 정말로 거의 멘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야곱도 정이 들었겠죠. 그런데 잃어버립니다.

9절입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절입니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절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약속해 주십니다. 네 허리에서, 후손들에게서 왕들이 나오고 민족들이 나오겠다라고 하십니다. 분명 북이스라엘 남유다일 수도 있고 열두 지파일 수도 있고 야곱을 통해 왕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다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뭐라고 하셨느냐!

14절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전제물은 관제입니다. 쉽게 말하면 전제물은 제물에 포도주나 독주를 붓는 것입니다.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일반적으로 기름을 붓지는 않습니다. 번제나 속죄제, 화목제 그리고 속건제는 기름을 안 붓습니다. 오직 소제에만 기름을 붓습니다. 지금 야곱의 제사 방법은 소제를 선택한 것이고 소제는 곡식을 갈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갈아서 드리고 기름을 붓는데 전제는 완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헌신예배는 ‘하나님 앞에 모든 걸 헌신합니다’하고 드리는 예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헌신된 예배를 드린 다음에 벧엘에 거주를 해야 하는데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에는 세겜성에 거주해서 딸이 강간당했는데 이번에도 벧엘에 거주하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안하는 것입니다. 예배만 잔뜩 드리고 나서 그냥 끝나버린 거예요. 여기서 거주해야 되는데 거주 안하고 다시 내려갑니다.

15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16절입니다.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에브랏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라고 성경에 나오죠. 에브라다는 베들레헴과 동지역이거나 근사지역으로 볼 수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10km정도인데 벧엘에서부터는 한 27km떨어져 있습니다. 27km면 보통 단체일 때 하루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입니다. 하루 걸어서 드디어 벧엘에 도착했을 때 자기의 사랑하는 라헬이 죽습니다. 벧엘에서 출발하는 순간에는 누가 죽었습니까? 유모가 죽어요. 그 다음 하루 걸어서 베들레헴에 왔을 때 라헬이 출산중에 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야곱을 통해서 네가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싸인을 통해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야곱은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세상에 자기가 가장 사랑한 부인이 죽는데 여전히 강경파입니다.

17절입니다.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절입니다.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절입니다.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라헬은 항상 성경에서는 개념상 구원상실의 대표이름으로 쓰입니다. 야곱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을 안해서 앞으로 구원 상실이 예고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아무리 영이 충만해서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해도 문제는 예배처가 잘못 되면 구원받은 어린 영혼들이 다 죽는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성숙해서 구원받지만 잘못 선택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예고해 주시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절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에델 망대가 어디에 있을까요? 베들레헴에서 헤브론까지 가는 길에 에델 망대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망대는 우리나라 과수원처럼 양떼를 멀리서 보는 곳입니다. 이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친 것입니다.

22절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드디어 에델 망대에서 죄가 발생합니다. 르우벤은 가장 장성한 자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처를 떠나서 오는네 번째 사건은 꽤 성숙한 영혼이 범죄하는 것입니다. 예배처가 얼마나 중요하냐면 예배처를 잘못 선택하면 첫 번째 장손, 즉 성숙한 영혼인 르우벤이라 할지라도 죄를 짓고 구원에서 이탈된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냥 듣고 끝나버립니다.

23절입니다.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절입니다.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절입니다.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절입니다.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절입니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헤브론은 ‘기럇아르바’의 동명입니다.

28절입니다.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절입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드디어 이삭이 죽습니다. 백팔십 세 먹었는데 당연하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때 이삭의 죽음의 표현이 그걸 증명합니다. ‘기운이 다하매’ 사실 오번역입니다. 원래 원어는 ‘이삭이 자기의 생명 자기 영혼을 단념하고’입니다. ‘단념하다’ 당연히 나이가 먹고 생명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왜 단념합니까? 단념하는 것은 영적으로 약할 때 단념합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영이 강하면 희망적이고 소망적이 됩니다. 그런데 영이 약해지면 쉽게 포기를 잘하고 단념하고 우울해지고 염세적이 됩니다. 반대로 영이 충만한 사람들은 항상 적극적입니다. 이삭의 죽음마저도 사실은 어디서 왔느냐? 사실은 뿌리가 야곱의 불순종에서 온 거예요. 만약에 야곱이 벧엘에 있었다면 이삭은 어쩌면 안 죽을 수도 있었어요. 예정된 거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모든 상황들은 하나님께서 다 끌어가시는데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하나님께서는 반응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 싸인을 주시는데도 순종을 안 하게 되면 갈수록 힘든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야곱이 만약에 이때 순종했으면 나중에 애굽을 갈 이유도 없었고 하나님이 이를 계획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맨 마지막으로 치신 게 이삭이 죽은 다음에 드디어 요셉이 애굽에 팔아 넘겨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잘못된 예배처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럼 어떤 예배처가 바른 예배처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드리는 곳이 바른 예배처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그 예배처에 늘 거해야 됩니다. 바른 예배처에서 계속 거하면 구원상실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명심할 것은 이 창세기 35장은 야곱의 불순종인데 계명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어긴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다 지켜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이 때문에 하나님의 고난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35장을 통해서 우리는 내가 있어야 할 예배처에서 항상 머물러야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른 예배처에서 우리가 떠나지만 않으면 우리는 모든 걸 얻게 됩니다.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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